피해자 거부에도 법원은 '일부 참작'…수정 형사공탁, '감형논란' 잠재울까
피해 복구? 감형 전략?…형사공탁 두고 엇갈리는 시선
새 양형기준 7월 공소 사건부터 적용
- 박서현 기자
(부산=뉴스1) 박서현 기자
"피해자 유족이 공탁금 수령을 거부하며 엄벌을 요구하고 있지만, 1억 원을 공탁한 점은 제한적으로 고려한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부산지법은 유기치사 사건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들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이같이 밝혔다. 유족은 공탁금 수령을 거부했지만, 피고인들이 맡긴 공탁금은 양형 사유 중 하나로 반영됐다.
일주일 뒤 부산고법에서도 비슷한 판단이 나왔다. 80대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은 항소심에서 심신미약이 인정돼 징역 16년에서 12년으로 감형됐다. 재판부는 심신미약과 함께 유족을 위해 1억 원을 공탁한 점도 일부 고려했다. 유족은 공탁금 수령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태였다.
피해자가 공탁금을 받지 않겠다고 하거나 수령 의사를 밝히지 않았는데도 법원은 왜 공탁 사실을 양형에 반영할까. 피해 복구를 위해 도입된 형사공탁이 피고인의 '감형 전략'으로 활용된다는 논란이 이어져 온 이유다.
형사공탁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인적 사항을 몰라도 법원에 피해 복구를 위한 돈을 맡길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다. 피해자 개인정보를 알아내 합의를 종용하거나 접촉하면서 발생하는 2차 피해를 막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피해자의 의사와 별개로 공탁 자체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평가되는 경우도 있었다.
법무법인 대륜의 최광현 변호사는 "현재 실무에서는 피해자의 수령 거부가 공탁의 양형 반영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는다"며 "합의에 준하는 실질적인 피해 복구로 보기는 어렵더라도 제한적으로 참작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피해자의 거부 의사가 명확하거나 공탁금이 피해 규모에 비해 부족하고 진지한 피해 복구 노력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이를 유리한 요소로 인정하지 않는 판결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기습공탁' 논란이 이어지자, 제도도 잇따라 손질됐다. 2024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법원은 공탁이 이뤄진 경우 선고 전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의 의견을 듣도록 했고, 일정한 요건 없이 피고인이 공탁금을 회수하지 못하도록 공탁법도 개정됐다.
올해 7월부터는 양형기준도 달라졌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전체 범죄 군의 '실질적 피해 회복(공탁 포함)', '상당한 피해 복구(공탁 포함)'에서 '공탁 포함' 문구를 삭제했다. 수정된 양형기준은 지난달 1일 이후 공소가 제기된 범죄부터 적용된다.
공탁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곧바로 피해 복구로 평가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다만 지난달 부산에서 선고된 두 사건은 적용 시점 이전에 기소된 사건이어서 이번 수정 양형기준의 직접적인 적용 대상은 아니다.
김민호 법무법인 LKB평산 변호사는 "현실에서는 공탁이 피해 복구보다 양형 전략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진지한 사과나 합의 노력 없이 선고 직전 공탁만 하는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형사공탁은 본질적으로 피해 복구를 위한 제도"라며 "피해자의 의사와 공탁 시점, 금액, 실제 피해 복구 노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양형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새 양형기준이 적용되는 사건에서는 공탁 자체가 '피해 복구'이라는 이유만으로 감경 요소로 인정되는 관행은 줄어들 전망이다. 다만 공탁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이 보인 피해 복구 노력과 피해자의 의사를 법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할지는 향후 판결을 통해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wiseh@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