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泉) 물길 따라 용 승천하듯"…대마도에 핀 '문화의 꽃' 황룡사
[인터뷰] 시인·화가·다도인…'종합 예술 수행자' 보혜 스님
- 임순택 기자
(부산=뉴스1) 임순택 기자 = "수행자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차(茶)를 나누고, 시를 쓰고, 붓을 잡는 모든 행위가 결국은 수행이자 중생과의 소통이지요."
부산 기장군 철마면 청량사에서 만난 주지 보혜 스님은 30년 내공의 비구니 수행자라기보다 '종합 예술인'에 가까워 보였다. 따뜻한 녹차 향기 속에 마주 앉은 그는 소녀 같은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시인, 화가, 차인(茶人), 그리고 사회사업가까지. 수많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스님이 최근 일본 대마도에 한국 사찰 '황룡사(黃龍寺)'를 열고 민간 외교관을 자처하고 나섰다.
대마도 유일의 한국 사찰, 그 이름은 왜 '황룡사'일까. 스님은 대마도의 지명과 자신의 태몽, 그리고 역사적 인연을 하나로 꿰어 설명했다.
스님은 "제가 용의 해, 용의 날, 용시에 용이 승천하는 태몽을 갖고 태어났다"며 "마침 절이 들어선 마을 이름이 '이즈미(泉)', 즉 샘이라는 뜻인데 물속에는 용이 살아야 영험하다고 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가야 허황옥의 후손으로서, 훗날 신라와 가야가 합쳐진 뒤 신라 최고의 사찰이 황룡사였던 점도 고려했다"면서 "무엇보다 바다를 낀 이곳은 백의관음이 모셔진 해수관음도량인데, 관세음보살님이 황룡을 타고 다니시는 형상을 따 '황룡사'라 명명했다"고 밝혔다.
황룡사의 탄생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2021년경, 스님과 차담을 나누던 한 보살이 "바다를 좋아하면 바다 있는 집을 드리겠다"고 던진 한마디가 씨앗이 됐다.
스님은 "처음엔 농담인 줄 알고 흘려들었는데, 3~4년 뒤 다시 연락이 와 '섬에서나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대마도에 있는 집을 내어주셨다"고 회상했다.
알고 보니 그곳은 일본의 도자기 장인 고바야시(90, 일본 인간국보) 씨가 살던 집을 한 한국인이 매입해 둔 곳이었다. 스님은 이 집을 '무주상보시(조건 없는 베풂)' 받았다. 곧바로 현지로 날아간 스님은 신도들과 함께 수개월간 구슬땀을 흘리며 폐가나 다름없던 곳을 쓸고 닦았다. 그 결실로 지난 2024년 8월 23일, 황룡사는 마침내 산문을 열었다.
이국땅에 절을 세우는 과정은 난관의 연속일 거라 예상됐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대마도 세관조차 스님의 원력 앞에선 문턱을 낮췄다. 김종구 Gateway 면세점 대표(신도회장), 정봉규 부산여행특공대 대표(신도회 사무총장), 팬스타 라인 등 현지 사정에 밝은 조력자들의 도움도 컸다고 했다.
황룡사는 단순한 포교당을 넘어 한일 양국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개원 1년여 동안 스님은 제주 4·3 사건 희생자 추모 다례재를 봉행하고, 조선 선조의 딸 이연왕희(李妍王姬) 헌다례를 올리며 구천을 떠도는 넋을 위로했다. 또한 15차례의 템플스테이와 한국 음식 발우공양 체험은 현지 주민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보혜 스님에게 예술은 곧 수행의 연장이다. 학창 시절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에 사연을 보내며 갈고닦은 글솜씨는 그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마음에 연꽃 피고'(2011)를 시작으로 벌써 4권의 시집을 낸 중견 문인이다.
다도(茶道)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가야에 차 씨앗을 가져왔다는 허황후의 후손이라는 사명감으로 부산차인연합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부산국제차문화교류회를 이끌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붓을 잡아 2022년 첫 개인전을 여는 등 화가로서의 재능도 꽃피웠다.
스님의 시선은 이제 렌즈 너머를 향한다. "때 묻지 않은 대마도의 자연을 사진에 담아 전시하고 싶다"는 보혜 스님. 오는 3~4월에는 그림 전시회를 열고, 울산 지장정사 불자들과 함께 용왕 방생 기도를 올리며 대마도 포교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종교와 국경, 장르를 넘나드는 스님의 '아트 불사(佛事)'는 현재 진행형이다.
limst6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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