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 괴한이 덮쳐서…" 지인 살해 60대의 변명[사건의재구성]

10년 이웃, 한 달에 한 번 술자리…그날은 막걸리 8병
"괴한 방어" 주장했지만 CCTV 등에 막혀 징역 14년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부산=뉴스1) 장광일 기자 = "사람을 죽이려고 칼로 찔렀는데, 그 사람이 죽어가요"

2025년 1월 3일 오후 6시 30분쯤 A 씨(60대)는 경찰서에 자진 신고했다. 전화로 경찰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A 씨는 둔기를 이용해 B 씨(50대·여)를 계속해서 내리쳤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A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지만, B 씨는 치료를 받다 끝내 숨졌다.

A 씨와 B 씨는 10년 전부터 근처에 사는 이웃이었다. 친분을 쌓아가던 중 B 씨의 동거인 C 씨도 함께 친해지게 됐다. 세 사람은 한 달에 한 번꼴로 함께 술을 마시며 교류해 왔다. 다만 A 씨는 평소 술에 취하면 욕설을 하거나 고함을 치는 등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난 날 역시 세 사람이 모임을 갖기로 했고 오전부터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B 씨의 집에서 만난 3명은 막걸리 6병을 나눠 마신 뒤 오후 3시쯤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이때 B 씨는 A 씨에게 "너희 집에서 술 좀 더 마시자"고 제안했다. 이를 수락한 A 씨는 자신의 집에서 B 씨와 막걸리 2병을 더 마시기 시작했다. 약 2시간 뒤 A 씨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격분해 B 씨에게 흉기를 수차례 휘두르는 모습으로 돌변했다.

재판에 넘겨진 A 씨는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주장과 함께 "당시 러시아 말을 하는 외모를 알 수 없는 시커먼 형태의 남자가 다가오며 목을 조르려 했다"며 "살해 의도는 없었고 생명에 위협을 느껴 방어하기 위해 흉기로 괴한을 수차례 찌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A 씨와 B 씨 사이에 특별한 원한이 없고, 피고인의 주장이 수사기관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기도 한다"면서도 "그러나 러시아인 괴한으로 생각했다 하더라도 대상의 착오일 뿐이고 '사람'을 살해하려는 의도가 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가 공격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 없어 '정당방위'라고 볼 수도 없고, 경찰에 상세한 내용을 말하며 신고한 점을 보면 심신미약 상태였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상해 등 혐의로 벌금형을 3차례 선고받은 점, 범행 방법이 잔혹한 점, 괴한을 방어했다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점 등을 참작해 징역 20년과 보호관찰 2년을 선고했다.

항소장을 제출한 A 씨는 태세를 바꿔 심신미약 주장을 철회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철회를 받아들이지 않고 양형 요소로 참작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가 잘 지내던 사이였던 점, 술을 마신 양이 주량보다 훨씬 넘어 매우 취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피고인이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또 C 씨가 처벌 불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2심은 원심보다 낮은 징역 14년을 선고했고, A 씨는 현재 복역 중이다.

ilryo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