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국보법 위반으로 실형 산 50대…44년 만에 재심

진화위 "불법구금·가혹행위 있었다"

부산고등·지방법원 전경 ⓒ News1 윤일지 기자

(부산=뉴스1) 장광일 기자 = 1981년 지인들에게 북한을 찬양하는 등 불순언동을 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살았던 고(故) 박모 씨에 대한 재심이 44년 만에 시작됐다.

10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4일 부산지법 형사항소4-1부(성익경 부장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살았던 박씨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을 열었다.

박 씨(당시 50대)는 1978년 6월부터 1981년 1월까지 10차례에 걸쳐 지인들에게 '38선을 없애고 통일이 되려면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 '남한은 사회제도 모순 때문에 없는 사람은 학교를 계속할 수 없으나 북한은 실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 등의 발언한 혐의로 1981년 2월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에 연행됐다.

박 씨와 함께 살았던 가족은 "사복형사 4~5명이 찾아와 아무 설명 없이 박 씨를 연행했고, 집에 있는 모든 책을 가져갔다"며 "그 뒤 박 씨는 교도소에서 출소할 때까지 집에 돌아올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연행됐던 박 씨는 한 달이 넘는 기간 구금 상태로 안기부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박 씨에 대한 구타 등은 없었으나 잠을 재우지 않고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조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박 씨에 대해 징역 3년 등을 선고하면서 "박 씨 범행은 반국가단체 활동을 고무, 찬양, 동조해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에 불복한 박 씨는 항소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일부 범행은 1980년 폐지된 '반공법'에 포함되지만, 다른 일부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며 징역 1년 등을 선고했다. 박 씨는 이후 상고를 포기하면서 실제로 징역을 살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1992년 박 씨가 사망하고 20년 뒤인 2022년 그의 손녀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진화위는 작년 6월 "조사 결과, 박 씨는 불법으로 구금됐으며, 수사 과정 중 잠을 자지 못하는 가혹행위를 당했던 것으로 판단되며, 이는 헌법이 보장한 신체의 자유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된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이라며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부산지법도 비슷한 이유로 올 8월 22일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그러나 재심이 시작돼서도 재판은 매끄럽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재판을 맡고 있는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 등에 따르면 국가 존립,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반공법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반공법 위반이 인정되더라도 이 사건은 소위 말하는 '찬양고무죄'로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고 설명했다.

최 변호사는 "무죄를 확신하는 상태에서 검찰은 입장 정리가 안됐고, 진화위에서 조사했던 사람을 증인으로 신청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며 한 기일 속행시켰다"며 "재심 청구 후 시간이 꽤 지났는데 대처가 아쉽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과거 법원과 검찰의 잘못으로 박 씨가 처벌을 받게 됐다"며 "과거사 반성 차원에서 신속하게 무죄 판결이 나도록 진행하는 것도 검찰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 다음 기일은 내년 1월 13일 부산지법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ilryo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