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최말자씨 "성폭행범 혀 절단, 18살 소녀 죄인으로 둘 순 없었다" (종합)

법원 "피해자 신체 기능 상실 인정 어려워"…최씨 "만감 교차"
'무죄 구형' 부산지검 "재판부 결정 존중…항소 제기 않을 것"

61년 전 성폭행범 혀를 깨물어 집행유예 확정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10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며 참석자들과 기뻐하고 있다. 2025.9.10/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부산=뉴스1) 장광일 김태형 기자 = "최말자가 해냈다!"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79)가 10일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법원 앞에는 최 씨를 축하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날 부산지법 형사5부(김현순 부장판사)는 최 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최 씨는 19세였던 1964년 5월 6일 오후 8시쯤 집에 돌아가던 중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 모 씨(당시 21세)에게 저항하다 입 안에 들어온 혀를 깨물어 1.5㎝가량 절단하고 노 씨가 말을 할 수 없도록 상해를 입힌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최 씨는 당시 6개월간 구금된 뒤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는 2020년 5월 한국여성의전화 등 단체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으나 당시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무죄로 볼 만한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기각했다.

그러나 최 씨는 '수사기관의 불법 구금'에 의한 재심 사유를 주장하며 재항고했고, 대법원은 지난해 "불법 구금에 관한 재항고인의 일관된 진술 내용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며 재심을 결정했다.

61년 전 성폭행범 혀를 깨물어 집행유예 확정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10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2025.9.10/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이날 재판부는 "증거 등을 종합하면 노 씨는 이 사건 이후 병원에 입원해 혀 봉합 수술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또 이 사건 과거 판결부터 4개월 정도 지나 육군에 입대했는데 당시 병역판정검사에서 최고 등급을 받고 베트남전에 파병된 뒤 정상적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또 "진술 등에 따르면 피해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언어 기능을 회복했고 이 사건 발생 1년 뒤엔 정상적으로 대화가 가능했던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노 씨가 신체 기능의 영구적인 상실이 발생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사건 당일 일면식이 없던 노 씨가 최 씨의 친구들과 피고인 집을 방문하게 됐다"며 "당시 피고인의 아버지가 알게 될 경우 혼날 것이 걱정됐던 피고인은 노 씨에게 귀가를 반복적으로 요청했다"고 했다.

이어 "당시 '길을 모르니 함께 걸어 달라'는 노 씨의 요청에 따라 피고인이 길을 안내하기 위해 함께 밖으로 나서게 됐고 이 사건이 발생했다"며 "노 씨와 최 씨가 함께 걷는 동안 대화를 하는 등 교류한 사정은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적극적인 방어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강간 등 추가적인 법익 침해행위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다분해 보이는 점, 범행 장소가 인적이 매우 드문 곳이었던 점, 피고인이 노 씨에 피해 체구가 작았던 점 등을 고려했을 때 피고인의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61년 전 성폭행범 혀를 깨물어 집행유예 확정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10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25.9.10/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재판이 끝난 뒤 최 씨와 그 변호인, 한국여성의전화는 부산지방변호사회에서 소감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최 씨는 "61년 전 18세 소녀였던 나는 죄인이 됐다"며 "주변에서 바위에 계란치기라고 만류했지만 이 사건을 묻고 갈 순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운이 참 좋아 주변의 인연들로부터 용기와 힘, 도움을 받아 오늘 이 자리까지 왔다"며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피해자들을 위해 앞장설 수 밖에 없었고 그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이날 이뤄진 선고에 대해선 "지금까지 '무죄'라는 두 글자를 위해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막상 (선고를)받고 보니 허망하기도 하고 씁쓸한 생각도 들고 만감이 교차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이 사건에 대해 정당한 반응으로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최 씨에게 고개 숙여 사과한 뒤 무죄를 구형한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공판기일에 무죄를 선고해 달라는 의견을 밝혔고 재판부 결정을 존중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검찰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ilryo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