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꿀벌, 떠나가는 부산 양봉농가…“정부차원 중·장기 대책 절실”

이동양봉 농가 "올해는 꿀따기 포기하고 빈 벌통만 지켜"
부산지역 작년 월동 전후 7614봉군 폐사, 피해율 전국 평균 웃돌아

양산 동면 법기리에서 양봉을 하는 이경진씨가 빈 벌통을 보고 한숨 짓고 있다.2023.5.10/뉴스1 ⓒ News1 조아서 기자

(부산=뉴스1) 조아서 기자 = “올해는 이동 안 합니다. 아니 못합니다. 꿀 생산은 꿈도 못 꿔요.”

지난 10일 양산 동면 법기리. 이동 양봉을 하는 이경진씨(71)는 본래 아카시아가 개화하는 이맘때 벌꿀을 채밀하기 위해 칠곡·의성·안동·울진 등으로 이동하며 15~20일 농가를 비우지만, 올해는 ‘꿀 따기’를 포기하고 농가를 지키고 있다. 농가 한쪽에는 빈 벌통 70여 개가 쌓여 있었다.

이 씨는 “100통 중 30통 남았다”며 “이 정도 규모로는 꿀 생산은커녕, 있는 꿀벌도 잃을까 봐 올해는 이동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1통(군)당 1만5000마리가 군집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이 씨 농가에서만 105만 마리의 꿀벌이 폐사했다.

21일 한국양봉협회 부산지회에 따르면 부산지역 113개 양봉농가에서 지난해 월동 전후로 총 7614봉군(벌 무리)이 폐사했으며 피해율은 66%에 달한다. 이는 전국 평균(61.4%)을 웃도는 수치다. 전날인 20일이 생태계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꿀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유엔이 지정한 '세계 벌의 날(World Bee Day)'이지만 꿀벌 개체 수는 유례없이 위협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꿀벌이 실종되는 사태가 이어지면서 부산 내 양봉농가에는 비상이 걸렸다. 올해는 양봉농가에서 조차 벌을 구하기 어려워 웃돈을 주고 봉군을 사 오는 일이 벌어졌다.

양호진 한국양봉협회 부산지회장은 “지난해 벌 한 군당 20만~25만원이었는데, 올해는 50만원까지 올랐다”며 “이마저도 구하기 어려워 올해 양봉업을 쉬는 농가가 많아졌다”고 호소했다.

◇‘지원 부족’ 부산 양봉농가 이탈…“체계성·전문성 필요”

“양봉에 생계가 달렸는데, 조금이라도 더 지원하는 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죠.”

양봉업자 최 모 씨는 부산에서 지난 2016년 양봉업을 이어오다 지난해 울산 울주군으로 터를 옮겼다.

최 씨는 “부산시에서는 한정된 기자재와 구제 약품을 지원하는데, 어떨 때는 원하는 품목이 없어 받지 않은 적도 있다”며 “수년간 부산시에 지원을 늘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예산 부족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털어놨다.

이어 “인구 이탈과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몇십억 예산을 쓰면서도 부산 양봉농가가 타지역을 떠나는 것에는 심각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한국양봉협회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체계적인 지원 제도와 전문가 부재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이 때문에 지자체 예산 여건과 양봉업에 대한 이해 정도에 따라 지원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윤화현 한국양봉협회장은 “전문가들이 벌꿀 집단 폐사를 이상기후나 병해충, 바이러스 피해 등 복합적인 문제로 진단하고 있다”면서 “고병원성 조류독감, 구제역 등에 보상비 지급하는 것처럼 꿀벌 폐사에 따른 농가의 피해에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꿀벌은 생태계의 건강을 관찰하거나 평가하는 데에 사용되는 환경지표종으로서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고 전 세계 식량 생산을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지자체와 국가 차원의 중장기적인 대응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조현수 부산시 해양농수산국 농축산유통과 동물방역팀장은 “부산 지역의 전문가 부재와 체계적인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에 공감한다”며 “아직 시작 단계인 꿀벌연구연합체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지역 대학의 연구자 등을 발굴하고 민·관·학 협의체의 거점이 되는 꿀벌연구센터를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ase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