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레인저가떴다] '귀를 쫑긋' 호수가 낳은 바위산…부부인가 남매인가
진안 마이산…햇빛이 비껴 비춘 저수지에 암봉·숫봉 실루엣
샘물 맑은 은수사, 신비속 탑사…그 곁엔 평온한 210km 진안고원
- 신용석 기자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마이산이라는 이름은 참 독특하다. 처음엔 웬 마이(my)?산! 했고, 말의 귀처럼 생겨 마이(馬耳)산이라 해서, 봉우리가 좀 비슷하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러다 언젠가 고속도로를 지나며 역광에 비친 두 개의 검은 봉우리가 엇갈려 서 있는 것을 보고, 과연 그렇구나, 어쩌면 저렇게 쫑긋하게 선 말의 귀와 똑같을까!, 아무리 자연의 힘이 신비롭다 해도, 너무 신기하다! 했던 마이산이다.
그 미끈하게 엇갈린 윤곽선을 보자마자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지붕이 생각났고, 바람을 맞아 팽팽해진 요트의 삼각돛이 연상되었으며, 미국 요세미티국립공원의 해프돔(half dome)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산에 바위가 많지만, 저렇게 조각칼로 빚은 듯한 미학적인 바위봉우리를 본 적이 없으니 너무나 이색적인 경관이다.
호수 밑에 있다가 솟아난 산이니, 두 개의 암봉이 다투며 솟다가 6m 차이로 경합을 멈추었을까?, 부부일까, 남매일까? 귀 부분만 솟았으니 땅을 파면 말의 순진한 얼굴이 나오지 않을까? 뭔가 계속 상상하게 만드는 마이산이다. 그런 마이산으로 간다.
마이산등산로는 합미산성-광대봉(609m)-봉두봉(540m)-암마이봉(686m)-탑사-주차장에 이르는 약 10km의 종주코스가 있고, 이 코스의 중간 중간으로 올라서는 여러 개의 단축코스가 있다. 봄과 가을의 산불조심기간에는 광대봉을 정점으로 하는 등산로 일부가 통제된다. 산 밑에서 탑사, 은수사, 암마이봉을 거쳐 마이산관광단지에 이르는 4.3km의 걷기 코스도 있어 가족단위 탐방객과 노약자들이 많이 이용한다. 탑영제(저수지)를 지나며 약 2km의 도로에 피는 벚꽃은, 진안고원의 서늘한 기후 때문에 전국의 벚꽃이 거의 질 무렵인 4월 하순에 핀다. 따라서 벚꽃을 마지막으로 보려는 상춘객들이 전국에서 몰리는 명소다. ◇ 남부주차장-비룡대-성황당-사양제 3.6km “쫑긋한 두 봉우리 바라보며 걷는 진달래 능선길”
주말의 오전, 마이산 남부주차장은 이미 만차인데 차량 행렬이 끝이 없다, 사찰 매표소에서 3000원을 내고 들어선 등산로도 탐방객들로 만원이다. 평범한 야산 풍경이지만 등산로 초입은 경사가 급해 지그재그로 20분쯤 올라가다가 고금당(古金堂)이라는 절집에 닿는다. 이름이 금당이라 금칠을 했는지 황금색 지붕이 번쩍거리고, 고려말의 나옹선사가 수도했다는 굴은 너무 화려하게 장식해서, 동남아의 칼라풀한 법당을 보는 것 같다. 이곳에서 마이산의 전체 모습을 첫 대면한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들과 산자락이 빼곡한 진안고원에 암마이봉이 쫑긋하다.
진달래가 활짝 핀 능선길에서 서너번의 짧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걷고, 급경사 철계단을 올라 비룡대(527m) 정자에 도착한다. 여기서 바라보니 암마이봉 뒤의 숫마이봉이 수줍은 듯 살짝 고개를 내민 모습이다. 남녀가 바뀌었다. 암마이봉 앞에는 봉긋봉긋한 여러 개 바위봉우리가 파도 모양으로 물결치는 모습이고, 뒤로는 멀리 덕유산 능선과 백두대간이 길게 누워 산평선(山平線)을 펼치고 있다.
오늘 절반 이상의 사람이 마스크를 벗었고, 벗은 사람들이 오히려 소란하게 지나간다. 헉헉대며 마주오는 사람을 향해 숨을 토해내는 사람도 많다. 코로나 초기에 입을 막고 서로 고개를 돌려 지나가던 때가 언제였던가, 이제 ‘코로나 위드’ 등산이다.
성황당 삼거리에서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오른쪽으로 꺾어 암마이봉으로 가는데, 나는 두 봉우리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사양제로 가기 위해 내리막 길로 내려선다. 밀착 없는 약 1km의 한적한 길 끝에 사양제(斜陽堤)에 도착한다. 햇빛이 비껴서 비추는 저수지라는 뜻이다.
이 작은 저수지는 마치 마이산을 감상하기 위해 조성된 것처럼 암봉・숫봉의 실루엣이 꽃봉오리처럼 벌어져 있고, 카메라를 당겨 보니 두 봉우리 표면에 난 작은 나무들이 솜털처럼 보송보송하다. 저렇게 미려한 조각품이라니! 땅에서 솟은 것이 아니라, 신이 정교하게 만들어 살짝 꼽아놓은 게 아닐까? 마침 터질 듯 말듯한 산벚나무 꽃눈과 연두색 새잎을 낸 나무들이 저수지 테두리를 곱게 수놓고 있는 가운데, 그 위로 말의 귀 두 개가 쫑긋한, 아름답고 낭만적인 봄 풍경이다.
그런데 한 가지 옥의 티가 있다. 이 순수한 자연을 앞에 두고, 저수지 가운데로 설치한 데크길과 인공분수에서 분출되는 물줄기가 ‘풍경의 자연미’를 해치고 있다. 이런 인공시설이 있기 전의 여러 사진에서 보았던, 두 봉우리가 수면에 투영된 환상적인 풍경을 다시는 볼 수 없단 말인가!
◇ 사양제-암마이봉-탑사-남부주차장 5.6km “1억년 역사의 우람한 바위, 아름다운 진안고원, 신기한 돌탑”
사양제를 뒤로 하고 다시 마이산으로 들어간다. ‘연인의 길’이라고 명명한 구불구불한 순환도로를 2km 걸어올라,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갈라지는 고개인 천황문에 도착한다. 여기서 마이산의 정상인 암마이봉까지 600m는 수직 계단과 가파른 난간의 연속이다. 겨울에는 위험해서 출입이 금지될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누구나 중간 중간 걸음을 멈추고 헉헉거리며, 왼쪽에서 함께 고도를 높이는 숫마이봉의 우람한 뷰를 감상한다. 천황문에서 30분쯤 만에 드디어 암마이봉(686m)에 도착한다.
정상석에 사람들이 긴 줄을 선 가운데, 여자들은 각종 포즈를 취하고 남자들은 간단한 인증사진만 찍는 남녀의 차이가 있다. 전망대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마이산과 진안고원의 아름다운 조감도를 한참 내려다보고 하산한다. 느긋하게 내려가는 나를, 올라오는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표정이다. 10분 전의 나처럼.
천황문에서 긴 계단을 내려와 샘물이 은처럼 맑다는 은수사(銀水寺)에 도착한다. 마이산은 계룡산과 더불어 기(氣)가 센 곳으로 꼽혀, 이성계가 은수사에서 기도를 했다고 하며, 그 때 심은 청매실나무 거목이 650년이 지나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다. 이 나무는 돌배나무의 일종으로 한국특산식물이다. 은수사 뒤에 솟은 숫마이봉을 가까이 보니 주름지고, 벗겨지고, 구멍 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럼에도 힘이 넘치는 노익장의 위용이 당당하다.
마이산은 호수에 퇴적된 암석이 1억년 전에 솟아난 것이어서, 암마이봉 정상에서 쏘가리와 다슬기의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암마이봉의 살결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면, 온통 자갈과 시멘트를 마구 버무린 콘크리트처럼 거칠고, 벌집처럼 구멍이 나거나 크게 패인 자국이 많다. 이런 지형을 타포니(tafoni)라고 하는데, 울룩불룩한 암석의 틈에 습기가 차 얼고 녹으면서 자갈들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런 자연의 조각 작업은 1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자연의 풍화작용이 빚어낸 신기한 타포니 경관을 지나, 이제 사람의 정성이 빚어낸 신비한 돌탑 경관에 다가선다. 이갑용이라는 도인이 30여년 간 전국에 있는 명산의 돌을 모아 쌓았다고 하는 80여개의 탑이 탑사(塔寺)에 꽉 차 있다. 그 중에서 대웅전 뒤에 있는 천지탑이 놀랍다. 하나의 몸체에서 두 개의 원뿔형 탑이 올라간 형태인데, 이는 마치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의 산세와 같은 이미지를 나타낸다. 높이 13m인 이 탑의 끄트머리는 수직으로 올라가며 가늘어지는데, 어떤 접착제도 쓰지 않고 돌끼리 맞물리도록 했다. 그런데도 이 탑은 물론, 다른 가느다란 자갈탑들도 태풍이 몰아쳐도 조금 흔들릴 뿐 무너지지 않는다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천지탑 밑 암마이봉 바위에 바짝 붙어 30m 이상 높게 올라간 덩굴식물의 마른 줄기가 있다. 죽은 나무가 아니라 ‘살아있는!’ 능소화다. 능소화의 영어이름은 ‘기어오르는 트럼펫 trumpet creeper’이다. 곧 잎을 티우고 여름에 트럼펫을 닮은 주황색 꽃무더기를 펼칠 것이다. 담장 너머의 님이 그리워 담장을 기어올라 꽃을 피우는 능소화가, 이 높은 봉우리를 언제 다 올라 님을 볼 것인지, 수백 년 앞으로 시간여행을 해서 그 모습을 보고 싶다.
탑사를 내려와 분홍빛 꽃망울들이 터질 듯 부풀어오른 벚꽃길을 걸으며, 탑영제 저수지 위로 멀어지는 암봉・숫봉을 뒤돌아본다. 여기서는 동그랗고 납작한 귀로 보여 아기 반달가슴곰의 귀여운 귀를 보는 것 같다. 공원입구에 사람들이 쭉 늘어선 상점이 있다. TV ‘생활의 달인’에 나온 ‘페스추리 대왕꽈배기’를 파는 곳이다. 겉바속촉, 겉은 바삭한 과자이고 속은 촉촉한 빵을 맛보며, 9.2km 4시간 반쯤 걸린 마이산 산행을 완료한다.
예전에 무주, 진안, 장수를 호남의 오지라 해서 ‘무・진・장’으로 불렀다. 그때의 오지는 오늘날 아름다운 절경이 ‘무진장’ 많은 관광지가 되었다. 거기에 ‘어루만져 달래준다’는 고장 진안(鎭安)이 있고, 그곳에 자연이 빚은 최고의 조각품과 인간이 만든 최고의 조형물이 있는 마이산이 있다. 프랑스에서 발행하는 여행안내서인 ‘미슐랭 가이드’에서 한국의 여행지 중 꼭 가봐야할 곳으로 선정된 마이산이다. 이곳에 온 누구에게나 ‘마이(my)! 산’으로 기억될 산이다. 코로나시대의 비대면 걷는길로 총 210km에 달하는 진안고원길도 추천한다.
stone1@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