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만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동물들

[눈물 흘리는 야생동물들] 범고래 '틸리쿰'과 흰고래 '벨로'

지난해 심각한 세균감염증에 걸렸던 틸리쿰은 수족관에 갇힌 지 33년 만인 올해 1월 숨을 거뒀다.(사진 Milan Boers 제공)ⓒ News1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특유의 지능으로 사냥 전략을 구사하는 바다의 최강자 범고래. '살인 고래'라는 악명으로 유명한 범고래가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피쉬(Black Fish·2013)'의 주인공 틸리쿰(36)이다.

세계 최대 해양 수족관인 미국 씨월드는 지난 1월 6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틸리쿰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씨월드측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심각한 세균감염증에 걸렸던 틸리쿰은 이날 오전 일찍 조련사 및 의료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수족관에 갇힌 지 33년 만의 일이다.

수컷 범고래 틸리쿰은 세 살 때인 1983년 아이슬란드 앞바다에서 포획된 후 씨랜드에서 지내다 24년 전 씨월드로 옮겨왔다. 그 후 '샤무쇼(Shamu show)'의 쇼 동물로, 고래 번식 프로그램에 정자를 제공하는 번식용 범고래로 지냈다. 틸리쿰은 공연이 끝나면 몸 크기만 한 보관 수조에 격리되었다. 몇 년 동안 금속으로 된 수조의 빗장을 이빨로 물어뜯어 치아가 다 닳아 없어질 지경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야생에서 범고래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좁은 수조에 갇히고 다른 고래들의 따돌림과 공격에 시달렸던 틸리쿰은 달랐다.

1991년 조련사로 일하던 캘티 번, 1999년 범고래를 구경하러 몰래 들어간 관람객 대니얼 듀크스, 2010년 함께 공연 중이던 조련사 돈 브랜쇼 등 3명의 인간을 죽여 살인 고래라는 악명을 얻었다.

틸리쿰의 사연을 다룬 영화가 공개되자 범고래쇼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잔인한 포획 과정부터 열악한 사육 환경까지.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될수록 수족관에 대한 시선은 차가워졌다.

또한 전 세계 동물보호단체들은 틸리쿰이 사람을 죽인 건 수족관에 갇혀 살며 받는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며 씨월드측에 인공사육과 동물쇼 중단을 요구했다.

관찰수조에 갇힌 틸리쿰 모습.(사진 Sawblade5 제공) ⓒ News1

영화가 나온 지 1년 반 만에 주가가 60% 이상 폭락한 씨월드는 결국 2016년 3월 범고래 공연을 중단하고 더 이상 범고래를 번식시키지 않겠다고 발표하고 동물보호협회와 함께 교육 프로그램, 동물 구조 및 반환 작업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캘리포니아 주는 2016년 9월 '범고래 보호와 안전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수족관 내 범고래 번식뿐 아니라 오락적인 범고래 쇼까지 모두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틸리쿰은 올해 죽어서야 자신을 괴물로 만든 좁은 수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최근 미국 스텟슨대와 뉴질랜드 오타고대 공동 연구팀이 '구강생물학'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족관에서 생활하는 범고래는 이가 뭉툭하게 갈려있거나 빠져있으며, 심한 치통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범고래 조련사인 존 제트 미국 스텐슨대 생물학과 교수팀은 미국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 스페인 등에서 사육되고 있는 범고래 29마리의 이 상태를 조사했다. 이는 현재 세계 수족관에 살고 있는 범고래(56마리)의 절반이 넘는 수다.

조사 결과, 범고래 이의 약 60%(총 713개)가 마모돼 있었다. 잇몸 상처는 20%에서 나타났고, 치아가 아예 빠져 구멍만 남은 경우도 15%나 됐다.

80종이 넘는 고래류 중에 수족관 전시를 위해 잡히는 고래류는 3종이다. 틸리쿰과 같은 범고래, 국내 돌고래 쇼에서 볼 수 있는 큰돌고래, 물속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흰고래 벨루가다.

전 세계 수족관에 갇혀 있는 고래류의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영국 동물보호단체인 본프리재단에 따르면 현재 수족관에 전시되고 있는 돌고래의 수는 2000마리 이상이다. 벨루가 227마리, 범고래 56마리, 상괭이 37마리, 범고래붙이 17마리 등이 343개의 수족관에서 사육되고 있다.

틸리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조련사 돈 브랜쇼.(사진 Ed Schipil 제공)ⓒ News1

현재 국내에서는 전국의 수족관과 체험시설 7곳에서 39마리의 고래류가 사육되고 있다. 넓은 바다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사는 고래류는 좁고, 단조롭고, 열악한 수조 안에서 쉽게 죽는다.

울산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의 경우 2009년 문을 연 이후로 수입됐거나 수족관에서 태어난 돌고래 11마리 중 절반이 넘는 6마리가 죽어 '돌고래 무덤'이란 별명을 얻었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는 지난해 4월 흰고래인 벨루가 '벨로'가 죽었다. 벨로의 체중은 600kg 정도로 5세 수컷이었다. 씨월드의 틸리쿰처럼 벨로도 두 살 되던 해인 2013년 러시아에서 수입됐다. 벨루가는 생후 20개월이 될 때까지 어미 곁에서 살며 모유수유를 한다. 하지만 벨로는 어미젖도 떼지 않은 젖먹이 때 팔려왔다. 한 번에 수심 20m 깊이까지 잠수하는 벨루가가 높이 7.5m의 원통형 수조 안에 갇혀 지내다 죽고 말았다.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과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등재된 멸종위기종 벨루가는 야생에서 수온의 변화에 맞춰 시속 10km로 무려 2000km가 넘는 거리를 헤엄친다. 북극해에 서식하고 있는데 러시아, 그린란드, 북아메리카 해안에서 발견된다.

러시아 정부는 해마다 외국의 수족관과 해양 테마파크에 수출할 용도로 벨루가를 포획하고 있다. 2013년에는 연구를 목적으로 18마리, 판매 용도로 245마리 등 총 263마리를 포획했다.

야생에서 붙잡힌 벨루가는 중국, 우리나라 같은 아시아 국가로 수출된다. 현재 전 세계 몇 마리의 벨루가가 수족관에서 사육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에만 적어도 114마리 이상이 사육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있는 벨루가.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홈페이지 캡처) ⓒ News1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여수 아쿠아플래닛이 러시아에서 3마리를 수입한 것을 시작으로 거제 씨월드에서 4마리, 롯데 아쿠아리움에서 3마리를 수입했다.

수족관에 사는 벨루가의 폐사율이 높다는 것은 이미 알져진 사실이다. 야생 상태의 벨루가는 50세까지 살기도 하지만 수족관의 벨루가는 30세를 넘기기 어렵다. 수족관에서 번식된 벨루가는 폐사율이 65%에 달한다.

다행히 환경부는 지난 9월 22일 돌고래 등 국제협약 멸종위기종은 심사를 통해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본 다이지에서 잔인하게 포획된 큰돌고래에 대해서는 수입이 불허될 것으로 보인다.

이형주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어웨어는 더 이상 전시를 위해 고래류를 수입하지 않을 것과 남아있는 돌고래는 좁은 수족관 대신 바다와 비슷한 환경의 보호소를 설치해 보호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면서 "가까이서 보고 싶고, 즐기고 싶고, 만지고 싶은 사람의 욕심 때문에 습성과는 무관한 환경에서 제 모습을 잃은 채로 살아야 하는 수많은 틸리쿰이 우리 주변에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동물들의 놀라운 습성과 아름다운 모습은 결코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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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