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견들 싸움 연습 위해 미끼가 된 고양이 '심바'
[나비에게 행복을] 음악감독 박칼린씨 만나 새 삶…고양이 친구도 생겨
- 이병욱 기자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인간들의 유희와 돈벌이에 동원되는 반려견의 또 다른 이름 '투견'. 투견들은 대개 잔인한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상대를 먼저 공격하도록 훈련을 받는다. 여기에 싸움을 위한 근력과 공격성을 높이기 위해서 스테로이드제나 마약성 약물을 맞기도 한다.
이런 투견들의 '전사' 본능을 자극하는 데 동원된 새끼고양이가 있다.
2014년 11월 6일 어느 지방의 한적한 야산에 자리잡은 한 투견 사육농장. 공격적으로 훈련된 한 무리의 핏불테리어들이 성난 이빨을 하얗게 드러내고 무섭게 짖어댔다.
투견들의 날카로운 이빨이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곳엔 작은 철장이 하나 놓여 있다. 그 안에는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고양이보호단체 사단법인 '나비야사랑해'의 유주연 대표가 제보자와 함께 도착한 현장의 모습은 정말 끔찍했다.
핏불테리어 여러 마리에 둘러 쌓인 히말라얀-샴 고양이의 눈빛은 겁에 질려 있었고, 스트레스로 인해 온몸은 말라 뼈만 앙상했다.
이 낯선 광경이 펼쳐진 이유는 농장주가 투견의 훈련에 고양이를 '미끼'로 삼았기 때문이다. 털이 길고 진한 갈색의 고양이는 투견들의 난폭한 본능을 자극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장 안에서 발악하는 고양이를 핏불테리어들은 자신을 맹렬히 물어뜯기 위해 링 안에 들어온 상대 투견으로 착각하는 듯 했다.
그렇게 투견들의 전투력을 높이는 데 온몸을 바친 고양이는 오랜 시간 노력 끝에 겨우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내내 차 안에서 유 대표는 고양이를 품 안에 꼭 안았다. 놀란 가슴에 극도로 흥분한 고양이를 조금이라도 안정시켜주기 위해서였다.
늦은 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연계 동물병원을 찾아가 검진을 받아보니 다행히 고양이는 영양결핍과 피부병을 제외하곤 비교적 건강했다.
안쓰럽기도 하고, 건강하라는 의미에서 유 대표는 고양이에게 '심바'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병원에 입원해 며칠간 치료를 받던 심바에게 뜻 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심바에게 입양자가 나타난 것이다.
지옥에서 벗어난 심바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뮤지컬 음악감독 겸 연출가인 박칼린씨였다. 당시 유기묘 입양을 원하던 박 감독이 심바의 사연을 듣자마자 입양을 결심했다.
그렇게 박 감독의 손을 잡은 심바는 요즘 두 고양이 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박 감독은 심바 이전에 이미 길고양이 엄마를 둔 새끼고양이 '루우'와 함께 지내고 있었고, 얼마 전에 또 다른 고양이 '쿠쿠'를 새 가족으로 맞이했다.
박 감독은 "한 집에 사는 고양이지만 어쩜 그렇게 다들 개성들이 강한지, 고양이 세 마리가 노는 모습은 그 어떤 코미디쇼보다 웃기고 창의적"이라면서 "고양이들과 마당에서 보내는 아침이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힐링이 되는 시간"이라고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박 감독은 또 "심바는 동생 고양이 두 마리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마을의 큰 개가 다가오면 쏜살같이 나서 개를 몰아낼 정도로 이젠 카리스마가 넘친다"고 말했다.
유주연 '나비야사랑해' 대표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또 다른 '과거의 심바들'이 많이 존재한다"며 "아이들이 내미는 손을 맞잡으면 그 아이들에게 다른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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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유기견 '토리'와 길고양이 출신 '찡찡이'가 대한민국 '퍼스트 도그'·'퍼스트 캣'이 됐다. 반려동물 양육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설 만큼 우리 사회는 동물들과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한해 평균 8만마리에 이르는 유기동물이 발생하듯 여전히 버려지고, 학대 당하며, 이유 없이 고통 받는 생명들도 많다. <뉴스1>의 반려동물 전문 플랫폼 '해피펫'은 고양이보호단체 사단법인 '나비야사랑해'(이사장 유주연)와 함께 '나비에게 행복을'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 땅에서 고통받는 생명들의 아픔과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다시 행복을 찾아준 사연 등을 통해서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