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상자에 새겨진 작품의 내력…간송미술관 '상서, 컬렉션을 읽다' 展
상서 30건 61점·유물 21건 45점·출품 유물 51건 106점 전시
간송미술관 서울 7일~12월 6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간송 전형필 선생의 탄신 12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보화각에서 특별한 가을 기획전 '상서(箱書), 컬렉션을 읽다'가 7일부터 12월 6일까지 열린다.
6일 간송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는 간송 탄생 120주년을 맞아 기획했다"며 "간송이 스승 오세창 등 당대 지식인들과 함께 치열하게 문화유산을 지키고 연구해 온 정신과 마음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자리"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는 상서 30건 61점, 유물 21건 45점, 출품 유물 51건 등 106점을 선보인다. 유명한 미술 작품 자체보다는 유물을 안전하게 담아낸 오동나무 상자와 그 위에 남겨진 기록인 '상서'에 초점을 맞춘다. 상서는 작가나 작품 이름, 만든 방식과 전해 내려온 내력을 적어 둔 기록이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 전형필 선생의 치열한 수집과 보존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일본 무로마치 시대에 중국 다기를 감식하던 문화에서 비롯됐고, 1910년대 이후 조선에 유입됐다. 이 관행을 간송이 당대 권위자들의 감정 체계를 도입해 간송 컬렉션 고유의 수장 체계로 정착시켰다.
김영욱 전시교육팀 팀장은 "전시는 간송 컬렉션 형성 과정을 추적하는 3년 연속 기획전의 대미를 장식한다"며 "상서는 작가명, 작품명, 재료뿐만 아니라 유물의 입수 경로와 전래 내역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독보적인 근대적 수장 기록 매체"라고 설명했다.
상서는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당대 최고 감식가였던 오세창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참여해 작품의 진위를 공인한 중요한 기록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잘못 알려졌던 작품의 진짜 이름을 찾거나, 작가가 사용한 특별한 재료와 전래 과정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상자가 단순히 유물을 보호하는 도구를 넘어, 후대에게 문화유산의 가치를 전하는 소중한 편지 역할을 해왔음을 강조한다.
전시장은 2층 조선 서화실과 1층 근대 서화실로 나뉘어 관람객을 맞이한다. 2층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들과 김홍도, 김시 등의 명작이 상서와 짝을 이뤄 공개되며 연대별 서체 변화를 보여준다. 1층에서는 안중식의 '한산충무'를 비롯해 조석진의 거대한 두루마리 그림 등 근대 서화가들의 흥미로운 인연과 애국정신이 담긴 작품들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조석진의 그림 중 일부는 간송의 첫돌 사진 배경에 있던 병풍으로 밝혀져 오래된 소장품의 깊이를 더한다.
이선형 유물관리팀 팀장은 "오동나무 상자는 가벼우면서도 적절한 방수성과 내연성을 갖추고 외부 충격을 완충해 유물 보존에 최적"이라며 "상자는 외함, 내함, 옴, 내장지 등 치밀한 형식을 갖추어 작품 손상을 최소화하며, 철저한 건조 과정을 거쳐 제작됐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새로운 볼거리도 관람객을 기다린다. 지난 90년 동안 보화각 앞을 지켰던 중국 사자상을 대신해 독특한 자세의 조선 시대 석호상 한 쌍이 새로운 문지기로 자리 잡았다. 이 석호상은 과거 간송이 경매를 통해 직접 낙찰받았던 유물로, 둥근 얼굴과 세운 몸이 애니메이션 호랑이를 닮아 친근한 매력을 뽐내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번 전시는 간송 컬렉션이 어떠한 기준과 정성 속에서 형성되고 전승됐는지 보여주는 자리다. 관람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며 오디오 가이드와 도슨트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되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유물을 품은 나무 상자의 묵향을 따라 100년 전 우리 문화재를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뜨거운 정성을 느껴보는 좋은 기회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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