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 미술관 '아트센터 나비', SK 사옥 떠나 사간동에 새 둥지
전시 12일~8월 1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노소영 관장이 이끄는 디지털 미디어아트 전문기관 '아트센터 나비'가 오랜 기간 머물렀던 SK그룹 서린빌딩 사옥을 떠나 사간동에 둥지를 튼다.
아트센터 나비는 2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으로의 이전 후 첫 기획전으로 키네틱 설치 미술가 한진수 작가의 개인전 '뜸: 어 프레그넌트 포즈(A Pregnant Pause)'를 12일부터 8월 1일까지 진행한다고 밝혔다.
지난 2000년 첫걸음을 뗀 아트센터 나비는 백남준, 박현기 등 거장들과 손잡고 26년 동안 기술과 예술을 융합하는 데 앞장섰다. 이번 사간동 이전이 뜻깊은 이유는 독립된 건물 전체를 전시장으로 쓰는 자립적 환경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미술관 측이 공간 운영의 전권을 쥐게 되면서 디지털 매체를 인간의 몸, 시간과 연결하는 독창적인 미래형 문화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번 전시의 핵심 주제는 '뜸'이다. 속도와 결과만을 따지는 피로한 현대 사회에서 잠시 멈춰 서서 무언가 익어가는 시간을 견뎌보자는 제안이다.
전시장에서는 한진수 작가의 다채로운 움직이는 예술품들이 공개된다. 수많은 붓질로 시간의 궤적을 담은 '그림형성기', 하얀 바닥 위에서 생겨나고 지워지는 흔적을 관찰하는 '화이트 폰드', 바람에 날리는 비누방울로 경계를 허무는 '불확실의 꽃' 등이 대표적이다. 기계의 잔잔한 떨림과 느리게 흐르는 흔적들은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명상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지난 26년간의 발자취를 정리하고 사간동에서 문을 다시 여는 현시점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미래가 자라나는 때"라며 "인공적인 기계와 대자연 사이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시간을 다뤄온 한진수 작가의 세계관이 미술관이 마주한 재개관의 순간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빠른 결과물과 세련된 기술력만을 뽐내던 디지털 예술계에서 아트센터 나비가 던진 '기다림'이라는 화두는 신선하면서도 묵직하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소비되는 시대에 일부러 속도를 줄이고 안으로 내실을 다지겠다는 이들의 선언은 단순히 기술 매체가 나아가야 할 진정한 생명력을 고민하게 만든다. 서두르지 않고 뜸을 들이며 채워갈 사간동 시대의 두 번째 장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한편, '아트센터 나비'의 이전은 노 관장과 최태원 SK 회장의 이혼 과정에서 파생된 법적 공방의 후속 조치 성격을 띤다. 앞서 해당 사옥을 관리하는 SK 측은 2019년 9월 임대차 계약 만료를 근거로 공간 반환을 요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지난 2024년 서울중앙지법원이 아트센터 나비의 무단 점유를 인정하고 퇴거와 함께 10억 4560여만 원과 지연 손해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미술관 측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이전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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