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과 시조에 스며든 칠레 작가의 붓끝"…에스페호 '브라이트 문'전

선화랑 6월 12일까지

세바스티안 에스페호 (선화랑 제공)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칠레 출신의 화가 세바스티안 에스페호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첫 국내 개인전 '브라이트 문'(Bright Moon)을 선보이고 있다.

6월 12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서구의 사실주의 학풍을 이어받은 작가가 동양의 미학과 만나 어떻게 예술적 영토를 확장했는지 보여주는 뜻깊은 자리다. 작가는 한국의 달항아리와 옛 시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완성한 신작 18점을 국내 미술 애호가들에게 공개했다.

이번 전시가 국내 미술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이유는 서양 화가가 우리 전통문화의 정수인 황진이의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를 시각적으로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차고 기우는 달의 흐름과 순간을 밝히는 달빛의 미학을 캔버스 위 형상과 배경의 관계로 치환해 낸 솜씨가 놀랍다.

세바스티안 에스페호, Blue green river, 2026, 20x15cm, oil on bass wood panel (선화랑 제공)

선화랑 관계자는 "이국적인 시선과 한국의 고전 문학이 결합하면서 그동안 국내 전시에서 보기 힘들었던 독창적이고 기묘한 조형적 언어가 탄생했다"고 전했다.

기획자의 세심한 연출력도 돋보인다. 전시장 곳곳을 일부러 어둡게 비워둔 여백의 공간은 관람객이 작품 사이를 거닐며 실제 은은한 달빛 아래 서 있는 듯한 호흡을 느끼게 유도한다. 이는 관람객이 공간 전체를 몸으로 체험하며 사유하도록 돕는 시도다. 시인 기형도의 '빈 집'이 연상되는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화면 구성은 보는 이의 기억 속 깊은 감정을 건드린다.

작가는 이미 국제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프리즈 뉴욕 등 굵직한 세계적 일정을 소화 중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한국 전시를 선택한 이유는 서구 중심의 현대 미술 시장에서 동양적 정신세계와의 융합이 작가에게 강력한 차별성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동서양의 사상이 결합했을 때 나오는 예술적 시너지를 느껴볼 bnt 있는 기회다. 메마른 현대인들의 감성을 채워줄 촉촉한 단비가 될 전망이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