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백건우 "인생 너무 짧아…이제부턴 자유롭게 음악 즐길 것"(종합)

30일 백건우 데뷔 70주년 기자 간담회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면 모두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80)가 30일 서울 영등포구 신영체임버홀에서 가진 데뷔 7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3.30 ⓒ 뉴스1 권현진 기자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오랜 세월 연주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늘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어요. 여든이 되고 보니, 이제부터는 정말 자유롭게 음악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올해 데뷔 70주년을 맞은 피아니스트 백건우(80)가 여생(餘生)은 음악을 즐기며 살고 싶다고 했다. 30일 서울 영등포구 신영체임버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다. 이날 간담회는 최근 발매된 새 앨범 '슈베르트'를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백건우는 10세 때 김생려(1912~1995)가 지휘한 해군교향악단(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으로 데뷔했다. 이후 1969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장래가 기대되는 피아니스트'라는 심사평과 함께 금상을 받았다. 2년 뒤 뉴욕 링컨 센터에서 독주회를 열며 현지 매체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지난 70년간 끊임없는 탐구와 성찰을 이어온 한국 1세대 피아니스트로,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린다.

이 같은 수식어에 대해 "누구나 자기 일에 충실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면 모두 구도자라고 생각한다"며 "직업과는 상관없고, 종교에 한정된 의미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별명이 마음에 드는지를 묻자 "무거워요, 남들도 다 하는 건데"라며 웃었다.

연주를 이어가는 원동력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연주한다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라며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표현하고 싶은 게 있다면 (연주는) 계속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연주자에게 은퇴라는 말은 큰 의미가 없다"며 "하고 싶은 곡은 많지만 다 할 수는 없다, 인생이 너무 짧다"고 덧붙였다.

백건우 '슈베르트' 앨범 커버(유니버설뮤직 제공)
"슈베르트는 천국서 온 음악"

백건우는 이번 앨범에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3번과 14번, 그리고 후기의 정수를 담은 18번과 20번까지 총 네 곡을 담았다. "전곡을 녹음하는 건 무리였고, 처음엔 다섯 곡을 하고 싶었지만 4곡으로 최종적으로 결정했다"고 했다.

슈베르트 앨범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13년 '슈베르트: 즉흥곡, 클라비어 소품집, 악흥의 순간'을 발표한 바 있다. 13년 만에 다시 슈베르트를 선보이는 데 대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것 같지는 않다"며 "제 안에 잠재돼 있던 음악이 어느 시기에 맞춰 나타나는 거다, 필연적이라고 할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연주자들 사이에 '내가 곡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곡이 나를 선택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틀린 말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슈베르트에 대해서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음악이지만, 동시에 정말 특별한 작곡가"라며 "그의 곡을 들으면 이게 인간이 쓴 것인지, 아니면 천국에서 온 건지 착각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어떤 작품은 작곡가가 구상하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데, 슈베르트의 음악은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 같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80)가 30일 서울 영등포구 신영체임버홀에서 가진 데뷔 7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3.30 ⓒ 뉴스1 권현진 기자
"후배들, 현대 작품 많이 연주해 줬으면"

후배 연주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로는 "현대 작품을 많이 연주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쓰인 곡을 청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며 "과연 우리가 200년, 300년 전 음악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내 손에 의해 세상에 처음 울려 퍼지는 음악이 있다면, 그보다 흥분된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 하반기에 자서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지난 70년 동안 세상도 많이 변했고, 내가 겪은 세계 역시 크게 달라졌다"며 "한국과 미국, 유럽, 중국 등 여러 곳에서 연주하며 경험한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알리는 일 또한 내 역할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데뷔 70주년과 신보 발매를 기념해 전국 순회 연주회도 갖는다. 슈베르트 소나타 13번과 20번, 브람스의 '네 개의 발라드'를 들려줄 예정. 4월 3일 부산시민회관 공연을 시작으로 경기아트센터(4월 18일), 통영국제음악당(5월 5일), 예술의전당(5월 10일), 평택아트센터(9월 12일)까지 무대를 이어간다.

이번 공연에서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 묻자, "청중 본인에게 달린 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연주자가 이 프로그램으로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관객이 얼만큼의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지가 더 중요하죠. 각자가 느끼는 세계는 알 수 없어요. 음악의 힘은 무한하기 때문이에요."

피아니스트 백건우(80)가 30일 서울 영등포구 신영체임버홀에서 가진 데뷔 7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3.30 ⓒ 뉴스1 권현진 기자

js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