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번의 칼질도 꽃이 되다"…이준호 '상처의 자리, 꽃이 피다'전

갤러리 508 2026년 1월 21일까지

이준호 '상처의 자리, 꽃이 피다'전 포스터 (갤러리 508 제공)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갤러리 508은 산수화를 중심으로 탐구를 이어온 이준호 작가의 신작 개인전 '상처의 자리, 꽃이 피다'를 개최한다.

내년 1월 2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랜 시간 천착해 온 '현대 산수'의 회화적 언어를 확장하며, 처음으로 '꽃' 시리즈를 선보이는 전환점이자 새로운 시기의 서막이다.

이준호 작가는 지난 20여 년간 자연의 형상과 시간의 흔적을 탐색하며, 칼로 긁어내는 행위를 회화의 핵심 기법으로 삼아 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기존의 '산' 이미지에서 벗어나 '꽃'이라는 생명의 형상을 통해 조형 언어를 새롭게 펼친다. 화면을 덧칠하지 않고 수만 번의 칼질로 긁어내는 역행적 회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상처와 치유, 절제와 폭발, 생성과 소멸의 이중적 에너지를 꽃의 형태 속에 응축한다.

이준호, Flower-13 65.1 x 53cm(15호) 2025 (갤러리 508 제공)

작가에게 '꽃'은 단순한 장식이나 상징적인 대상이 아니다. 그는 "수만 번의 칼질은 비로소 꽃이 됐다"고 말한다. 이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 얻어진 수행적 결과이자, 상처의 자리에서 피어난 생명의 은유이다. 긁히고 잘려나간 칼날의 흔적은 꽃잎의 결로 남고, 화면 위에 쌓인 단면들은 한 송이 꽃의 중심을 이룬다.

이준호의 회화는 덧입히는 대신 비워내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여기서 칼은 파괴의 도구가 아니라, 형태를 새기고 생명을 피워내는 '붓'이 된다. 작가가 수양적 시간 속에서 반복해 온 긁어내기의 행위는 결국 "한겨울의 차가운 칼바람을 이겨내고 봄날의 꽃봉오리를 피워낸" 존재의 기록이 된다.

이번 '꽃 시리즈'는 색채의 절제를 통해 오직 조형 행위의 본질만을 남긴다. 단색의 화면 위에 새겨진 칼날의 흔적은 고요하지만 강렬하며, 침묵 속에서 피어오르는 생명의 숨결을 드러낸다. 이준호의 '칼로 그린 꽃'은 상처와 생명, 절제와 폭발이 공존하는 조형의 시(詩)이자, 한국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