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록 "'미투'는 현재진행형…증언은 회복의 시작"(종합)

연극 '프리마 파시' 주연…23일 라운드인터뷰

배우 김신록(저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이 작품은 허구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한 인물이 무대를 끌고 가는 체험적이고, 현재적이며, 사회적인 성격을 띠고 있죠. 지금은 힘이 조금 약해졌지만, '미투'(Me too)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배우 김신록(44)은 연극 '프리마 파시' 무대가 주는 어려움에 대해 작품 속 사건이 '지금, 여기'의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신록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프리마 파시' 관련, 라운드 인터뷰를 가졌다. '프리마 파시'는 인권 변호사 출신 극작가 수지 밀러의 작품으로 2019년 호주에서 초연된 이후 영국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2023년 토니어워즈 여우주연상,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즈 최우수 연극상, 여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극은 오직 승소만을 쫓던 야심 찬 변호사 '테사'가 하루아침에 성폭행 피해자가 되면서 법 체제와 홀로 맞서는 782일간의 싸움을 그리며 법 체제의 허점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연극 '프리마 파시'에서 김신록 공연 모습(쇼노트 제공)
"대사 많아 수능 다시 보는 느낌"

이날 인터뷰에서 김신록은 힘든 점으로 대사량을 꼽았다. '프리마 파시' 대본은 18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총 90쪽에 달한다.

서울대 지리학과 99학번인 그는 "재수하지 않기 위해서 수능을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웃음)"며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대본을 들여다볼수록 깊이 사유해야 할 부분이 많아, 첫 공연 전날 잠을 한숨도 못 잤다"며 "남편이 제가 작품 하면서 이렇게 잠을 못 자는 건 처음 봤다고 하더라, 저는 그저 하나님께 '저 어떡해요, 도와주세요' 하고 기도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김신록은 난생처음 밤을 꼬박 새운 채 첫 공연 무대에 올랐다고 했다.

김신록은 1인극인 이 작품에서 이자람·차지연과 번갈아 가며 주인공 '테사'를 연기하고 있다. 그는 "더블이나 트리플 캐스팅의 장점은 상대 배우에게서 배운다는 점"이라며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더 크게는 '객석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인물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라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똑같은 대본을 두고도 배우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모습을 보면 기쁨과 놀라움, 위기감과 아름다움이 교차한다"며 "이자람 배우는 객석과의 거리를 확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차지연 배우는 '내가 바로 테사다'라는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몰입한다"고 덧붙였다.

연극 '프리마 파시'에서 김신록 공연 모습(쇼노트 제공)
"고통스러울지라도 복기해낸다"

이 작품에서 테사는 성폭행당하는 장면을, 대사를 통해 직접 묘사한다. 김신록은 이를 두고 "증언이라고 생각한다"며 "내 입을 막은 것이 내 손이 아니라 동료 변호사 줄리언의 손임을 증명해야 하는 과정에서, 계속 생각하고 기억해 내는 그 순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 과정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깊은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이라며 "법정에서 비로소 그 기억을 말로 발화해 내는 것이 바로 증언의 힘이자 회복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공연을 관람한 관객 중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후기에는 "심적으로 힘들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는 평이 눈에 띈다.

김신록은 이에 대해 "120분은 배우도 관객도 함께 힘을 내고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이라며 "커튼콜의 박수는 작품이나 연기력에 대한 박수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격려이자 공감을 뜻하는 박수이기에, 배우로서 더없이 값진 보상"이라고 했다.

지난달 27일 개막한 '프리마 파시'는 오는 11월 2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펼쳐진다.

js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