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들아, 과거 싣고 훨훨 타올라라"…베니스에서 다시 청도로
이배 작가 개인전' 달집태우기', 경북 청도천에서 피날레 장식
정월 대보름 맞아 100여 명 참관객 지켜보는 가운데 거행
- 김정한 기자
(청도=뉴스1) 김정한 기자
"제 작품의 화두는 '순환'입니다. 이날 베니스(베네치아) 전시에서의 작품을 불태우는 것은 지나간 과거를 태우고, 새로운 것을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배 작가의 개인전 '달집태우기'(La Maison de la Lune Brûlée)의 피날레가 12일 오후 5시 경북 청도의 청도천에서 개최됐다.
지난해 이배 작가는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연계 부대 전시로 '달집태우기'를 선보였다. 앞서 2월 그의 고향인 청도에서 달집태우기를 시작해 베니스로 향한 후 이제 다시 청도로 돌아와 순환의 여정을 완성했다.
달집태우기는 청도 주민들이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모여 행하는 전통 의례다. 보름달이 떠오를 때 나무나 짚으로 만든 달집에 불을 질러 주위를 밝히는 놀이로, 액을 쫓고 복을 부르는 염원을 담은 행사다.
이날은 짚으로 만든 달집 대신, 청도천의 작은 섬 전체에 흰 종이가 덮어씌워졌다. 그 아래에는 이배 작가가 베니스 전시 때 사용하고 가져온 붓질한 종이, 소원을 담아 적은 한지, 베니스 전시장 벽을 장식했던 도배지 등이 채워져 있었다.
저녁 5시 10분께, 어스름 저녁 빛이 일대를 감싸기 시작하자 100여 명의 참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카운트다운과 함께 이배 작가가 점화 단추를 눌러 달집태우기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그 순간 화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작은 섬 곳곳에 화염이 오르며 불꽃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날 조현화랑의 주관으로 펼쳐진 달집태우기는 사람의 문화와 자연의 화합, 비움의 순환, 자연의 호흡과 리듬 등 풍부한 서술을 바탕으로 만물의 연결됨을 다룬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날 참관인들도 염원을 적은 종이를 전달해 퍼포먼스에 한몫했다. 자연과 호흡하며 유구하게 지켜온 민속 의례와 전통을 기념하고 자연의 호흡을 되짚고자 하는 염원도 담아 불꽃에 실어 보냈다.
이배 작가는 행사 직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날 청도천에서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여정을 마무리한다"며 "이는 한국 전통문화의 현대적 해석을 통해 순환과 흐름을 나타내는 염원을 담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달집태우기를 통해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냐는 질문에 "1년 전 청도천에서의 볏집을 태우며 염원했던 새로운 시작을 실제로 이뤘다"며 "베니스 전시 때 영상물 작업이라는 새로운 작품을 시도한 일, 이탈리아의 카라라에서 검정 화강석을 채취해 '먹'을 만들어 작업한 일, 3000명이 넘는 많은 사람과 공동 작업으로 베니스 전시장을 꾸몄던 일" 등 3가지를 대표적으로 꼽았다.
이배 작가는 '태우기' 행위와 '소멸과 생성을 통한 순환'이라는 의미에 대한 글로벌 공감대가 있느냐는 질문에 "서구권에는 가톨릭의 '생장' 의식이 있는데, 나쁜 것을 태우고 새로운 것을 맞는다는 의미로 달집태우기와 비슷하다"며 "베니스 전시 당시 참관인 중 퍼포먼스를 보고 감동을 받아 우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비엔나(빈)에서 차로 24시간을 달려 일부러 달집태우기를 보러 온 한 참관객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퍼포먼스 장소로 청도천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청도는 내 고향이며 작품의 어머니 같은 곳"이라며 "봄에 냉이를 캐어 먹던 순수한 마음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는 이곳에서 오늘날 환경, 전쟁, 인간성 상실 등 두려움을 일소하고 순환과 회복을 통해 대자연과 함께 새로운 생명과 시작을 염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날 은근히 눈과 비가 섞여 내려 보름달은 보이지 않았고, 땅도 젖어 있던 탓에 기대했던 맹렬하게 활활 불타오르는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호젓하게 흐르는 청도천 작은 섬 일대에서 은은하게 자작자작 타들어 가는 붉은 불꽃은 또 다른 신비롭고 영험한 운치를 선사했다.
참관인들도 어둠이 깔린 강둑에서 각자 자신의 염원이 하늘로 닿아 새로운 것을 맞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화염 위로 날아오르는 흰 연기를 묵묵히 지켜봤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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