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의심하라…이미지 과잉 시대 사진에 질문하다

물감으로 인물 가린 사진…백승우 'Guideline(s)' 전

백승우, GL-A-#002, 2018, Acrylic on Digital print, 42x86cm(가나아트 제공)

(서울=뉴스1) 여태경 기자 = 누구나 카메라를 항상 들고 다니는 시대, 더이상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사진작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진작가 백승우는 현재 도래한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 사진매체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는 가나아트한남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Guideline(s)'에서 역사적인 사건을 포착한 사진에서 물감으로 인물들을 가린 사진을 내걸었다.

백승우는 전시제목인 'Guideline(s)'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에 담긴 보이지 않는 지시들과 그 안에 숨어있는 권력을 밝혀 사진의 진실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자 했다.

백승우의 그간 작업들은 '사진으로 사진을 의심하는 사진'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가나아트한남에서 만난 백 작가는 "디지털 사진이 나오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특허 같은 게 없어졌다"며 "제가 생각하는 사진의 답은 찍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수없이 찍는 사진을 분류하고 나열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예전처럼 운명적인 장면을 만나서 좋은 사진을 찍는 시대는 지났다. 브레송이나 카파의 시대에는 그 사람들만이 기록자이자 전달자이니까 이미지가 좋은 사진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고 말했다.

백승우는 10년 전 북한을 방문했을 때 가이드가 데리고 다니는 곳만 다니고 찍으라는 것만 찍고 필름도 검열 당하는 일을 경험하면서 사진을 찍는 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고 한다.

그는 이번 작업에서는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중국의 마오쩌둥이 악수하는 장면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만남을 찍은 사진들을 가져와 인물들을 채색해 가렸다. 비록 인물들을 가렸지만 이 사진들은 보는 일부 관람객들은 가려진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인식한다.

백 작가는 "사진의 정보 부분을 다 삭제해도 사람들이 누구인지 식별하는 것은 이미 받은 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이 지점에서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백승우 작가.(가나아트 제공)

백승우는 이번 전시에서 김정은 손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제스처의 손 사진들도 전시한다. 그는 "김정은이라는 대상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지점이 어디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 호텔에 걸려 있는 세계지도를 모형으로 재현하고 이를 다시 촬영한 작품도 선보인다. 이 지도에는 영국이 사라지고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주요 도시는 없고 대신 북한과 연계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에만 불이 들어와 있다. 작가는 제작한 모형을 전시하지 않고 일부러 이를 다시 촬영해 작가가 개입하는 이중 가공의 과정을 거쳤다.

전시는 9월27일까지.

ha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