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덕후의 인썸니아] “공연을 선물합니다” 제8극장의 단독공연

밴드 제8극장의 리더 서상욱 님이 페이스북에 쓴 '월세내기의 어려움'에 대한 글이 수도 없이 공유되고 기사화되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서 '월세요정'으로 거듭난 이야기는 지난 포스팅에서 소개해드린 바 있습니다.(http://news1.kr/articles/?2531776 참조) 그 일을 계기로 제8극장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상당히 늘었고, 또 그동안 조용히 숨어 지내던 제8극장의 팬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적극적으로 공연을 관람하고 SNS에 관심을 표현하면서 이들의 공연에는 늘 아쉬움이 남게 되었습니다. 40분가량의 공연시간으로는 팬들이 듣고 싶어 하는 노래를 다 해 줄 수가 없고, 또 이래저래 공연 관람이 어려운 팬들도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리하여 제8극장은 '팬들이 듣고 싶어 하는 노래는 다 해주겠다'며 선물과 같은 단독공연을 열게 되었습니다. 이 공연은 유명 가수 이승환 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인디 신의 큰 형님 같은 존재인 이승환 님은 '차카게살자'라는 재단을 만들어서 인디음악의 발전을 위해 여러가지 좋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로 한 달에 5팀의 밴드를 선정하여 공연을 지원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차카게살자'에서 공연장의 대관료를 지원하고 공연수익금은 모두 밴드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정말 착하죠!) 제8극장은 1월의 공연밴드 중 하나로 선정되어 무리 없이 단독공연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뜻깊은 공연에 덕후아줌마가 빠질 수 있나요. 무려 2분도 안 되어 매진된 이 공연 티켓을, 행운의 여신이 저의 오른손으로 강림하여 평소보다 엄청나게 재빠른 클릭질을 해서 12번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 (이건 기적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어요) 이렇게 잡은 맨 앞자리를 혹시라도 늦게 가서 놓칠까 봐 서둘러 공연장으로 갔습니다.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제8극장의 팬 몇몇이 사비를 들여 만든 기념품을 나눠주었어요. 원래 팬들은 뮤지션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인데, 워낙 인성이 좋은 제8극장의 팬들 역시 참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어서 돈과 시간과 정성을 들여 기념품을 만들어서는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일일이 나눠주었답니다.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날름날름 챙겨받았습니다.

150명이나 들어갈 수 있을까 싶던 클럽타는 생각보다 큰 편이어서, 관객이 빈틈없이 꽉 차긴 했지만 좁아서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맨 앞에 서서 무대를 둘러보니, 바닥에 연주곡들의 순서가 적힌 셋 리스트가 보였어요. 스물여덟곡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한 곡당 4분 정도의 길이라고 해도 연주시간만 두 시간이 넘으니 정말로 쉬지 않고 노래할 각오였던 거죠.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고, 저를 비롯한 관객들은 떨리고 설레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제가 제8극장을 처음 알게 된 2012년 이전에 발표한 곡들도 많이 연주해 주었는데, 어린 나이에 만든 그 곡들을 지금의 제8극장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조금 부끄러워하는 듯했지만 예전 곡들을 듣고 싶어 하는 팬들을 위해서 들려주었어요. 사실, 이분들이 부끄러워 할 만큼 유치하거나 이상한 음악은 전혀 아니었으며 오히려 저에게는 지금의 분위기와 조금 다른 예전 곡들이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제8극장의 공연을 본 날 연주했던 '사람을 찾습니다'도 오랜만에 들을 수 있었지요. 좀 과장된 창법으로 노래하던 그때와는 달리 아주 정성껏, 한 음 한 음 집중하는 상욱 님을 보니 감격으로 가슴이 꽉 차는 느낌이었어요. 당시 군복무 중이던 함민휘 님이 키보드로 연주한 전주 부분을 그때는 임슬기찬 님이 기타로 대신했었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기억이 나지 않아 상욱 님한테 물어보았습니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 동물 옷을 뒤집어쓰고 연기를 하던 상욱 님의 코믹한 모습이 오버랩되어 잠시 웃음이 나왔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더욱 진국이 된 이 매력남 같으니라고!

슬기찬 님이 만들었다는 '내 여잔 결혼했다네'라는 노래는 이날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드럼스틱을 내려놓고, 또 키보드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온 김태현 님과 함민휘 님, 그리고 서상욱 님 셋은 악기 없이 마이크를 잡고 화음을 넣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치 결혼식 축가를 부르듯, 아카펠라 그룹이라도 된 양, 우렁찬 남성 코러스의 이 노래는 '옆 동네 놈팽이 자식과 결혼해버린' 옛 애인에 관한 것이었어요. 역시 상식의 틀을 깨는, 유머가 넘치는 제8극장답더군요.

셋 리스트에 적힌 순서대로 연주하던 중간에, 상욱 님은 순서를 바꾸어 나중에 하기로 되어 있던 '오늘부터 1일'을 먼저 하자고 멤버들에게 제안했습니다. 공연을 보러 와 준 관객들에게 사랑고백을 하는 마음으로 하는 노래라는 이 곡을 먼저 하기로 했다는 건, 아마도 그때쯤 관객들에 대한 상욱 님의 애정이 폭발하여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어요. 티케팅에 성공한 150명의 관객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눈을 맞추면서 노래를 하는 상욱 님. 맨 앞에 있던 저와는 세번쯤 눈이 마주쳐서 심장이 터져 죽을 뻔했다지요. 평소 감정표현을 잘 못한다는 상욱님은 그 대신 눈빛에 모든 마음을 담았습니다. 눈으로 말한다는 얘기가 사실이라는 걸 경험한 날이었어요. 눈빛을 보니 이 사람들이 얼마나 관객들에게 감사하고 있는지, 얼마나 관객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스물여덟 곡 중 많은 노래들을 관객들은 다 외워서 따라불렀는데, 제8극장에게 그것은 행복한 서프라이즈였습니다. 상욱 님의 목소리로 듣고 싶었던 몇몇 곡들을 관객들이 크게 따라불렀지만, 그 노랫소리가 참으로 즐겁게 들려서 나름 괜찮았어요. 공연이 끝난 후 상욱 님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낡은 재킷을 관객들이 따라불러서 깜짝 놀랐다. 노래 불러준다고 돈 받아놓고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관객들의 노랫소리가 좋아서 멍하니 듣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그 광경과 그 표정을 보는 것이 참 좋았지요.

마지막 곡인 '나는 앵무새 파리넬리다'가 끝나고, 이승환 님의 '차카게살자' 재단에서 협찬을 받아 준비한 선물인 티 인퓨저와 다이어리를 나눠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워낙 배려심과 인정이 넘치는 상욱 님은 선물을 관객 모두에게 줄 수 없으니 받는 사람보다는 못 받는 사람들이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어요. 생각나는 숫자를 불러 입장번호와 일치하는 관객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는데, 그 숫자를 고르는 일이 상욱 님에게는 매우 괴로운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맨 앞에 있던 관객 한 명을 불러내어 그분에게 남은 선물을 나눠주도록 시켰답니다. 참… 착한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선물을 못 받아서 실망할 나머지 관객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이 배려심 넘치는 남자라니!

앙코르곡으로 준비했던 '너랑 뽀뽀할래'까지 다 끝났지만 아쉬움에 공연장을 떠날 수 없던 관객들은 앙코르를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네 사람은 잠시 상의를 하더니, 이미 했던 곡이지만 '대항해시대'를 다시 한번 연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연을 보며 영상을 찍어주는 분들 덕분에 그 영상을 통해서 우리의 공연 모습을 모니터링할 수 있었습니다. 영상을 찍어주셔서 정말 고맙지만, 사실 그냥 맨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불편하게 보셔야 하니 항상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편하게 보시라는 의미에서 대항해시대를 다시 한번 연주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따뜻한 마음에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실제로 펑펑 우는 관객도 있었지요) 저는 영상을 찍지는 않지만 그래도 카메라를 놓고 맨 눈으로 이 네 남자들의 잘생긴 얼굴을 보았습니다. 두시간이 넘도록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땀을 흘리며 힘든 상태였는데도 진지하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이 사람들은 그 순간 세상에서 최고로 잘생기고 멋진 남자들이었습니다.

실력이 뛰어나고 훌륭한 음악을 하는 밴드이기도 하지만, 음악 이전에 좋은 인성을 지닌 사람들이어서 더욱 멋진 제8극장. 관객들에게 한 곡이라도 더 들려주려고 말도 아끼고 얼른 다음 곡을 시작하느라 물 한모금 마시려던 민휘님은 물병을 내려놓아야 했고 입에 있던 물을 뿜어야 했던 슬기찬 님. 그리고 이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던 관객들의 감동한 마음 역시 밴드 멤버들에게 전해졌던, 이심전심의 공연이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150명의 관객과 네 명의 제8극장 멤버들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애정과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끊임없이 오갔습니다.

덕후아줌마의 덕심을 더욱 깊어지게 만든 제8극장의 단독공연. 150명밖에 볼 수 없었다는 게 너무 미안하고 아쉬웠어요. 이제 곧 3집 앨범이 나온다고 하니, 분명 앨범 발매 기념공연을 하겠지요. 더 큰 장소에서 더 많은 관객들을 행복하게 해 줄 제8극장을 기다립니다!

제8극장은 이런 밴드 : http://news1.kr/articles/?2485816

제8극장의 페이스북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theatre8

필자 강지연은

나이가 좀 되는 서울아줌마.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일본으로 가서 패션스쿨을 다녔으나 배운 것을 써먹은 적은 없음.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미국 시골의 대명사 오클라호마에서도 살았던 경험 있음.

2007년 우연히 본 인디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그에게 한눈에 훅 빠져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탠딩 공연이라는 걸 가보게 되고…

그 공연에서 눈앞에서 펼쳐지는 기타, 베이스와 드럼연주 모습에 넋을 잃고 그 후 홍대 인근 클럽을 쏘다니며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는 취미를 얻게 되었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일본 Bunka 패션스쿨 졸업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졸업

k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