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곡의 '아버지', 김성태 작곡가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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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은 1910년 11월 9일 서울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양음악을 교회에서 접했다.

그는 소학교를 마치고 서울 경신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18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으로 편입학, 일본의 교토 양양중학교를 졸업했다. 

김 선생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현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했는데 이 시기 음악적 전환기를 맞게 된다. 

그는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며 현제명과 채동선에게 작곡을 배웠는데 이때 현제명과의 만남은 그가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큰 기반이 됐다.

김 선생은  잠시 연희전문학교에 다닌 후에 바로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 도쿄 고등음악학교(현 구니다치 음악대학)에서 작곡공부를 마무리 했다.

한국으로 귀국한 그는 경성보육학교 합창단 상임지휘자(1939∼1945)와 보성전문학교 음악강사로 활동했다.  

해방 후에는 채동선이 설립한 고려교향악단의 객원지휘자(1945∼1946)로 지내면서 현제명이 설립한 경성음악학교에서 교육자로 활약했다.

김성태 선생의 대표작들은 주로 한국전쟁 전후인 암울한 시기에 발표됐다.

그가 1945년 발표한 '동심초'는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로 광복 이후 황폐해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랬고,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또 김 선생은 6.25 전쟁 중 서울음대생 30여 명으로 구성된 공군 정훈 음악대를 창설해 활동했으며 이때 또 다른 대표작 '이별의 노래'를 만들었다. 

그는 굴곡진 역사속에서 명곡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곡활동을 해왔으나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나라와 민족을 위한 마음을 담아 무려 100곡이 넘는 아름다운 가곡을 만들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될 부분이다.  

이에 정부는 김성태 선생의 공로를 인정해 1962년 문화훈장을 수여한 바 있다.

이 외에 김선생은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예술원상, 3.1문화상, 5.16민족상 등을 받았다.

cho8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