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자동차 발명가 니콜라 조제프 퀴뇨 사망 [김정한의 역사&오늘]

1804년 10월 2일

니콜라 조제프 퀴뇨 기념물 (출처: Fosse, et le Petit Journal,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04년 10월 2일, 세계 최초로 스스로 움직이는 증기자동차를 개발한 프랑스의 군사 공학자이자 발명가 니콜라 조제프 퀴뇨가 파리에서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마차와 말의 힘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운송의 패러다임을 기계 동력으로 전환하며 현대 내연기관 및 자동차 산업의 씨앗을 뿌린 인물이다.

1725년 프랑스 북동부 뫼즈주 부아드봉에서 태어난 퀴뇨는 육군 기술장교로 복무하며 무거운 대포와 군수 물자를 수송하는 작업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당시 군사 작전의 최대 난제는 진흙탕 길에서 대포를 실어 나르는 수송력이었고, 그는 가축의 한계를 절감하며 이를 극복할 기계적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1769년 육군 장관 에티엔 프랑수아 드 슈아죌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두 개의 수직 실린더를 장착한 3륜 증기 수레 '파르디에 아 바푀르'를 세상에 내놓았다. 거대한 증기 보일러를 전면에 장착한 이 기계는 무려 4톤 이상의 화물을 싣고 시속 약 4㎞의 속도로 전진하는 데 성공하며 운송사의 새 장을 열었다.

하지만 이 획기적인 도전은 세계 최초의 자동차 사고라는 오명과 함께 시련을 맞았다. 1771년 성능 개선 차량의 주행 시험 도중 조향 장치의 결함과 빈약한 브레이크 탓에 파리 아스날의 벽을 들이받는 참사를 빚은 것이다. 이 사고와 더불어 후원자였던 슈아죌 장관이 실각하면서 막대한 개발 지원금은 끊겼고 군용화 작업도 전면 백지화됐다.

설상가상으로 1789년 발발한 프랑스 대혁명의 혼란 속에서 왕실 연금이 끊기자 퀴뇨는 생계를 위협받으며 벨기에 브뤼셀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극심한 빈곤 속에서도 공학적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훗날 기술적 가치를 알아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배려로 다시 연금을 받게 되며 조국 파리로 귀환할 수 있었다.

퀴뇨는 생전에 자신의 발명품이 거리를 누비는 모습을 온전히 지켜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3륜 증기차는 파리 국립기술공예박물관에 보존돼 현대 문명의 출발점을 증명하고 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