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만주철도 선로 폭파로 만주사변 도발 [김정한의 역사&오늘]

1931년 9월 18일

만주 주둔 일본군 (출처: Agence de presse Meurisse,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31년 9월 18일 밤, 중국 만주 봉천 인근의 류타오후에서 대지와 어둠을 뒤흔드는 폭음이 울렸다. 남만주철도 선로 일부가 파괴된 이 현장은 일본 관동군이 대륙 침탈의 야욕을 품고 스스로 저지른 자작극의 무대였다. 일본은 이 폭파 사건을 중국군의 소행으로 둔갑시키며 만주사변의 서막을 열었다.

치밀하게 조작된 폭발음은 단순한 철도 파괴에 그치지 않았다. 군국주의의 야욕에 사로잡힌 일본 제국주의가 대륙 침략의 마각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며 국제질서를 정면으로 유린한 야만적 폭거의 신호탄이었다.

당시 관동군은 선로 폭파의 책임을 중국군에 터무니없이 뒤집어씌웠다. 사건 발생 직후 신속하게 군사 행동을 개시한 일본군은 하룻밤 사이 봉천의 주요 거점을 무차별적으로 장악하며 침략의 영역을 순식간에 넓혀갔다.

속수무책으로 기습을 당한 중국 측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군사적 요충지들을 연달아 내어주었다. 국제사회의 평화 체제와 군축의 기조를 비웃듯, 군부 파시즘 세력은 폭력적 정복 야욕을 거침없이 현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결국 일본은 이듬해 괴뢰 정권인 만주국을 전격 수립했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아이신기오로 푸이를 내세운 허울뿐인 정부는 실상 관동군의 총칼 아래 놓인 식민 통치의 전초기지에 불과했다. 국제연맹의 무능함을 확인한 일본은 이후 더욱 대담하게 침략의 칼날을 휘둘렀다. 이는 결국 훗날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라는 끔찍한 참화로 이어졌다.

만주사변의 발발은 동아시아를 파멸적인 참혹함으로 이끈 핏빛 비극의 서막이었다. 만주를 삼킨 제국주의의 탐욕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넓은 중국 대륙으로 향했다. 이는 머지않아 전 세계를 피로 물들일 제2차 세계대전과 끔찍한 중일전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파국의 서막이었다. 방심과 무관심이 방조한 야만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시대를 직시하는 눈이 얼마나 절실한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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