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네사 윌리엄스, 흑인 최초 미스 아메리카 우승 [김정한의 역사&오늘]

1983년 9월 17일

바네사 윌리엄스 (출처: Gotfryd, Bernard, photograph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83년 9월 17일, 미국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서 열린 '제57회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서 62년 대회 역사상 최초로 흑인 우승자가 탄생했다. 영예의 주인공은 뉴욕주 대표로 출전한 스무 살의 시러큐스 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생 바네사 윌리엄스였다.

1921년 출범한 미스 아메리카 대회는 과거 대회 규정 제7조에 '참가자는 백인 혈통이어야 한다'는 노골적인 인종 제한 조항까지 존재했다. 이 규정은 1940년에 폐지됐으나, 흑인 여성이 본선 무대에 오르는 것조차 수십 년간 금기시됐다. 윌리엄스의 왕관은 인종 분열과 편견의 높은 벽을 넘어선 획기적인 승리였다.

하지만 대가는 가혹했다. 당선 직후부터 그를 향한 인종차별적 협박과 살해 위협이 빗발쳤다. 편견 어린 시선 속에서 겨우 임기를 이어가던 그는 1984년 7월 뜻밖의 위기를 맞았다. 대회 출전 전 아르바이트로 촬영했던 과거의 누드 사진이 성인 잡지에 본인 동의 없이 무단 게재된 것이다.

거센 비난 여론과 대회 조직위원회의 압박에 윌리엄스는 결국 당선 10개월 만에 스스로 왕관을 반납했다. 대회 역사상 초유의 불명예 사임이었으며, 언론과 대중은 그를 한순간에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몰아세웠다. 한때 인종 통합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영광은 그렇게 순식간에 차가운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윌리엄스는 편견과 낙인을 실력으로 정면 돌파했다. 1988년 가수로 데뷔해 '빌보드 핫 100' 1위를 기록한 '세이브 더 베스트 포 라스트' 등 수많은 히트곡을 쏟아냈다. 이후 뮤지컬과 브로드웨이, 영화, 드라마 '어글리 베티'와 '위기의 주부들'을 종횡무진 누비며 정상급 만능 엔터테이너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그의 당당한 궤적에 결국 세상도 고개를 숙였다. 2015년 미스 아메리카 조직위원회는 32년 만에 윌리엄스를 심사위원장으로 공식 초청해 과거의 부당한 압박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윌리엄스는 오늘날에도 역경에 굴하지 않는 회복탄력성의 귀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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