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자동차 공학자 페르디난트 포르셰 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875년 9월 3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75년 9월 3일, 체코 주데텐란트 라이헨베르크에서 페르디난트 포르셰가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기계와 전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그는 정규 공학 대학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야간 기술학교 지식과 비범한 직관력으로 기술을 체득해 당대 최고의 설계자로 성장했다.
1898년 로너사에 입사한 청년 포르셰는 세계 최초의 전륜구동 전기차와 가솔린·전기 결합 하이브리드카 '로너-포르셰'를 파리 만국박람회에 선보여 주목받았다. 이후 다임러 등에서 기술 책임자로 고성능 레이싱카와 양산차를 설계하며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쳤다.
1931년 슈투트가르트에 독자적인 설계 사무소를 연 그는 전설적인 '폭스바겐 비틀'의 기틀을 마련했다. 히틀러의 국민차 개발 요구에 맞춰 설계된 공랭식 후방 엔진의 비틀은 훗날 2100만 대 이상 팔려나가며 대중 모터리제이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나치 정권 협력은 큰 오점이었다. 2차 세계대전 중 티거 전차 차체와 퀴벨바겐 등 군용 장비 설계에 깊이 관여한 그는 종전 후 프랑스 군정에 의해 전범 혐의로 20개월간 투옥됐다. 이는 공학적 성취 이면에 남은 지울 수 없는 과오였다.
석방 뒤 그는 아들 페리와 함께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셰'를 세웠다. 비틀을 기반으로 경량화와 공기역학을 살린 '포르셰 356'을 완성해 현대 스포츠카의 기준을 세웠고, 그가 만든 차들은 국제 모터스포츠 무대를 단숨에 휩쓸었다.
수감 후유증으로 쇠약해진 포르셰는 1951년 1월 30일 75세로 슈투트가르트에서 숨졌다. 하이브리드카와 국민차, 스포츠카를 아우르며 이동의 역사를 바꾼 천재였으나, 정치적 광기와 결탁한 기술자의 윤리적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인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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