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예술로"…구사마 야요이, '호박·물방울'로 세계 홀린 日 전위예술가

세계적 현대미술가 구사마 야요이 영면

형형색색의 물방울무늬를 활용한 작품으로 유명한 일본 전위예술가 구사마 야요이가 14일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도쿄도의 한 병원에서 별세한 사실이 27일 알려졌다. 향년 97세. 사진은 2017년 9월 26일 도쿄의 작업실에서 기자들과 대화하는 모습. 2026.08.27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물방울'과 '호박',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 거울의 방'으로 세계 미술계를 사로잡은 일본의 전위예술가 구사마 야요이가 별세했다. 향년 97세.

1929년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에서 태어난 구사마는 어린 시절부터 환영과 환각을 경험했다. 물방울과 빛, 꽃 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환각을 겪었고, 이를 자신의 작품세계로 끌어들였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그의 작품을 대표하는 반복적인 점과 그물무늬 등의 모티프가 됐다.

구사마는 교토시립미술공예학교에서 공부한 뒤 1952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뉴욕에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다. 당시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이 주류를 이루던 미술계에서 거대한 크기의 '무한 그물'(Infinity Net) 회화와 반복적인 패턴을 선보이며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1960년대에는 회화뿐 아니라 조각과 설치, 퍼포먼스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반전과 평화 메시지를 담은 해프닝을 벌이는 등 전위예술가로 활동하며 동시대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후 구사마의 작업은 점과 거울, 빛을 활용해 무한과 소멸, 존재와 부재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확장됐다.

구사마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확고하게 한 대표작은 '무한 거울의 방'(Infinity Mirror Room) 시리즈와 호박 조각이다. 거울과 빛을 활용해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공간을 구현한 '무한 거울의 방'은 관람객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며 구사마를 현대미술의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형형색색의 물방울무늬를 활용한 작품으로 유명한 일본 전위예술가 구사마 야요이가 14일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도쿄도의 한 병원에서 별세한 사실이 27일 알려졌다. 향년 97세. 사진은 2023년 6월 29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맨체스터 국제 페스티벌 개막을 앞두고 열린 사전 공개 행사에서 한 방문객이 구사마의 설치 작품 '너, 나 그리고 풍선들(You, Me and The Balloons)' 일부를 지나가고 있는 모습. 2026.08.27 ⓒ 로이터=뉴스1

특유의 검은 점이 뒤덮인 노란 호박 역시 그의 상징이 됐다. 구사마는 호박을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조각으로 발전시켰다. 2021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는 그의 대표적인 '호박'이 약 94억 원에 낙찰되며 구사마 조각 작품 가운데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구사마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에 일본 대표 작가로 참가하며 국제 미술계에서 입지를 더욱 굳혔다. 국제적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상도 받았다. 2003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받은 데 이어 2016년에는 일본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구사마의 작품은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됐다. 제주 본태박물관과 대구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등을 비롯한 국내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선보였다.

js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