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수학의 왕자' 피에르 드 페르마 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601년 8월 17일

피에르 드 페르마 (출처: François de Poilly,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601년 8월 17일, 프랑스 보몽드로마뉴의 부유한 상인 가문에서 피에르 드 페르마가 태어났다. 법관이자 변호사로 활동했던 그는 수학을 취미로 삼았고, 그럼에도 당대 수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이다.

오를레앙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평생 사법관으로 살았던 그가 공직의 중압감 속에서 선택한 유일한 도피처는 고대 그리스 문헌을 탐독하고 난제를 푸는 지적 유희였다. 그는 르네 데카르트와 함께 좌표계를 도입한 해석기하학의 기틀을 독립적으로 세웠으며, 곡선의 접선을 긋고 극대·극솟값을 구하는 독창적인 방식을 고안했다. 이는 훗날 아이작 뉴턴과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가 집대성한 미적분학의 결정적 토대가 됐다.

확률론의 탄생 역시 그의 손끝에서 비롯됐다. 블레즈 파스칼과 주고받은 서신을 통해 중단된 도박 게임의 판돈 분배 문제를 수학적으로 분석하며 현대 확률 이론의 기초를 닦았다. 불확실한 미래의 가능성을 논리로 규명한 이 교류는 수학적 사고를 인문·사회과학적 영역으로 확장한 일대 사건이었다.

정수론 분야에서 페르마의 통찰은 독보적이었다. 고대 수학자 디오판토스의 '산학'을 탐독하던 그는 소수의 성질을 파헤치며 '페르마의 소정리'를 정립했고, 현대 암호학의 근간이 되는 수론 연구를 이끌었다. 연구 결과를 공식 논문으로 발표하기보다 동료 학자들에게 편지로 문제를 던져 시험하는 기벽은 지적 호기심의 순수성을 방증한다.

그의 이름을 불멸로 만든 것은 단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다. 책 여백에 "경이로운 증명법을 발견했으나 여백이 좁아 적지 않는다"라는 메모를 남긴 이 명제는 350여 년 동안 최고 석학들의 도전 과제였다. 1995년 앤드루 와일스에 의해 최종 증명되기까지 그는 인류 지성사에 유례없는 지적 서사를 남겼다.

생전 단 한 편의 정식 논문도 출간하지 않은 이 사법관은 '아마추어 수학의 왕자'라는 별칭을 넘어 근대 수학사의 거인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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