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비극 '보도연맹 학살 사건' 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950년 6월 27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50년 6월 27일, 전국 각지에서 '국민보도연맹' 구성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연행과 구금, 그리고 집단 학살이 시작됐다.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전황의 불리함을 민간인의 피로 덮으려 했던 잔혹한 비극이다.
앞서 6월 25일 북한군의 남하로 전황이 극도로 악화하자 이승만 정부는 이른바 '예방적 폭력'이라는 명목하에 내부의 잠재적 적을 제거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무자비한 칼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국민보도연맹'이었다.
국민보도연맹은 정부가 좌익 관련자를 전향시켜 관리하겠다는 목적으로 1949년 결성한 관변 단체였다. 명칭 자체는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으나, 실상은 사상 통제를 위한 덫에 가까웠다. 지역별 할당제를 채우기 위해 좌익 활동과 무관한 농민, 글을 모르는 일반 민간인까지 강제로 가입됐다. 전쟁이 터지기 전 이들에게 제공하겠다던 '안전'과 '보호'의 약속은 전선이 무너지자 순식간에 살인 리스트로 돌변했다.
정부 최상부의 명령을 받은 헌병대와 경찰, 방첩대(CIC)는 보도연맹원들을 대대적으로 소집했다. "피난을 시켜주겠다"거나 "잠시 조사할 것이 있다"는 감언이설로 민간인들을 학교, 창고, 형무소 등에 격리 수용했다.
현장의 목격자들은 군용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 가던 주민들의 마지막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구금된 이들은 제대로 된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인적이 드문 야산과 골짜기로 끌려가 등 뒤에서 가해진 총탄에 힘없이 쓰러졌다.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은 오랫동안 국가에 의해 철저히 은폐됐다. 하지만 전국 수십 곳의 학살 현장에서 유해 발굴이 진행되면서 보도연맹 사건은 서서히 진실의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까지 밝혀진 학살 규모는 최소 6만 명에서 최대 20만 명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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