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의 인권을 바꾼 '미란다 원칙'의 탄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966년 6월 13일

용의자를 체포하는 미국 경찰. (출처: Senior Airman Victor J. Caputo,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66년 6월 13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사법 역사상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혁신적인 판결을 내렸다. 피의자를 체포할 때 변호인 선임권과 진술거부권 등 기본 권리를 반드시 고지해야 한다는 '미란다 원칙'(Miranda Warning)이 공식적으로 수립된 날이다.

이 판결은 공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개인의 인권을 지키는 이정표가 됐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한 범죄자의 기막힌 행적이 얽혀 있다. 사건의 주인공은 에르네스토 미란다다. 그는 1963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18세 여성을 납치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미란다에 대해 2시간 동안 강도 높은 심문을 벌였고, 결국 그는 범행을 자백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미란다에게 헌법이 보장하는 진술거부권이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애리조나주 법원은 미란다의 자백을 바탕으로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미란다의 자백에 대한 증거 효력을 부인하고 시간을 애리조나 주 법원에 환송했다. 대법원은 "공권력이 적법한 절차를 지켜야만 그 증거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이 판결로 인해 미국 경찰은 범인을 체포할 때 반드시 그의 권리를 고지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됐다.

그러면 미란다는 어떻게 됐을까. 검찰은 미란다에 대해 그의 자백 대신 전 동거녀의 증언 등 다른 증거들을 모아 그를 다시 기소했다. 결국 그는 유죄 판결을 받아 1972년까지 복역했다. 가석방된 후에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미란다 카드'에 사인을 해 파는 기행을 벌이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1976년, 미란다는 피닉스의 한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칼에 맞아 숨졌다. 경찰은 미란다를 살해한 용의자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그리고 미란다가 가지고 있던 '미란다 카드'를 들고 용의자에게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하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라며 미란다 원칙을 낭독했다. 이에 따라 용의자는 묵비권을 행사한 뒤 증거 불충분에 따른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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