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호러 아이콘' 크리스토퍼 리 타계 [김정한의 역사&오늘]

'드라큘라'에서 '사루만'과 '두쿠 백작'까지 악역 전문 명배우
2015년 6월 7일

크리스토퍼 리가 열연한 드라큘라(1958년)를 표제로 소개한 잡지. (출처: Black Shield Publications Inc., 1962,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2015년 6월 7일, 영국의 베테랑 배우 크리스토퍼 리가 호흡기 질환 및 심부전으로 숨을 거뒀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이자 70년 가까이 은막을 지킨 그의 죽음은 전 세계 영화계에 큰 슬픔을 안겼다.

리는 런던의 이탈리아 백작 가문 출신 어머니와 영국 군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왕립공군(RAF)에 자원입대했다. 전쟁이 끝난 후인 1947년, 리는 연기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95cm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와 낮고 중후한 바리톤 목소리는 초기에 높은 진입 장벽이었으나, 곧 그만의 강력한 무기가 됐다.

1950년대 후반 영국의 해머 필름 프로덕션과 손잡으면서 그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주'(1957)의 괴물 역으로 눈도장을 찍은 뒤, '드라큘라'(1958)에서 우아하면서도 치명적인 흡혈귀 백작을 완벽하게 소화해 세계적인 호러 아이콘으로 우뚝 섰다. 1974년에는 영화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제임스 본드와 대적하는 세련된 암살자 프란시스코 스카라망가 역을 맡아 전 세계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진가는 노년에 접어들며 더욱 빛을 발했다. 2000년대 들어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타락한 백색의 마법사 '사루만'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또한 '스타워즈' 에피소드 2와 3에서는 강력한 시스 군주 '두쿠 백작'으로 분해 노익장을 과시했다.

리는 안주하지 않는 예술가였다. 80대가 넘은 나이에도 헤비메탈 앨범을 발매해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렸고, 게임 성우로 활동하는 등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영화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2009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리는 한 세대의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평생을 카메라 앞에서 불태운 그는 떠났지만, 그가 스크린에 새겨 넣은 강렬한 눈빛과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영화사에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