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은 열광, 고려인은 소외"…우즈벡 한국어 교육 현장의 아이러니

채예진 고려인 글로벌 네트워크(KGN) 이사장 인터뷰
"한국 체류 고려인 12만 명 시대, 언어 장벽 해소가 급선무"

채예진 고려인 글로벌 네트워크(KGN) 이사장. ⓒ 뉴스1 김정한 기자

(타슈켄트=뉴스1) 김정한 기자 = 중앙아시아 지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코리아 디아스포라'를 형성 중인 현지 고려인 동포 사회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4일(현지 시각) 진행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세종학당의 '통일과 나눔 아카데미' 제6회 수료식에는 고려인 글로벌 네트워크(KGN)를 이끄는 채예진(Yevgeniya Tskhay) 이사장이 참석했다. 그는 고려인 동포 4세로, 2018년 한국 국적을 얻고 귀화했다. 카자흐스탄 국영방송에서 기자, 앵커, MC 등으로 활약한 방송인 출신이다. 현재 한국과 중앙아시아를 오가며 기업가, 언론인, 사회 활동가로 활약 중이다.

통일문화연구원(이사장 라종억)의 문화 행사 현지에서 만난 채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고려인들의 사회적 위치, 교육 실태, 그리고 기타 직면한 과제 등에 대해 들어봤다.

-현재 몸담고 있는 KGN은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

▶KGN은 해외나 국내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이 상호 협력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다.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 거주하는 약 50만 명의 고려인 동포와 국내에 체류 중인 12만여 명의 고려인들을 하나로 묶는 소통 기반이 필요하다는 공감대에서 출발했다. 2024년 50명으로 공식 출범했으며 현재 회원은 1000여 명에 이른다, 전 세계 한민족 커뮤니티의 연결과 발전을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내 고려인 인구 규모는.

▶현재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약 17만 명이다. 국적을 기준으로 통계를 내기 때문에, 한국에 실제 거주하는 인원 중 상당수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참고로 한국 체류 고려인 12만 명 중 출신 국적별로 살펴보면 우즈베키스탄 출신이 약 4만7000명으로 가장 많고, 러시아 출신이 2만7000명, 카자흐스탄 출신이 2만3000명으로 세 나라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일부 국가 간 국적 이탈이나 행정 문제로 무국적 상태에 놓인 동포들도 존재한다.

23일, 세종학당에서 채예진 고려인 글로벌 네트워크(KGN) 이사장(오른쪽)이 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의 소개를 받고 있다. ⓒ 뉴스1 김정한 기자

-과거와 비교했을 때 오늘날 고려인들의 사회적 위치는.

▶고려인은 본래 부지런해서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CIS(독립국가연합) 지역에서 열심히 살아왔고,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는다. 한민족 특유의 교육열을 바탕으로 "자식들은 무조건 고등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일념이 대를 이어지면서,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CIS 각국의 고려인들은 정계 의원, 언론사 기자, 의사, 과학 기술자, 조각가 등 사회 전반의 핵심 주류 분야에 대거 진출해 있다. 과거 소련 시절에는 유대인에 이어 학력 수준이 두 번째로 높았을 만큼 교육 열의가 대단했다. 1937년 강제 이주라는 고통을 겪은 조상들이 자녀 교육에 헌신한 결과다.

-통일문화연구원의 아카데미 등 민간 차원의 문화 사업에 대한 현지 반응은.

▶한국에 가보지 못한 현지 청소년과 청년들이 한국어와 문화를 배울 기회를 얻는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이런 기회는 청년들의 미래 무대를 넓혀준다. 특히 이러한 문화 사업은 이 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우즈베키스탄 현지 고려인들의 한국어 교육 현황은 어떠한가.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우즈베키스탄 현지의 한국어 학습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한국문화원이나 한국교육원 외에도 민간 차원의 어학당과 한국어 학교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 중 고려인 동포 청소년의 비율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교육기관마다 수십 명의 수강생 중 고려인은 고작 서너 명에 불과하며, 나머지 절대다수는 우즈베키스탄 등 현지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명확한 원인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정작 혈통을 이어받은 고려인 청소년들에게 모국어에 대한 관심이 제대로 닿지 않고 있다는 점은 깊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채예진 고려인 글로벌 네트워크(KGN) 이사장. ⓒ 뉴스1 김정한 기자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고려인 동포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현재 한국에 약 12만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비율은 10% 미만이다. 초급 수준이 절반 정도고, 상급 구사자는 극소수다. 한국에 살면서도 말이 통하지 않아 취업이나 생활에서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 한국어를 전파하는 것도 좋지만,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동포들에게 의무적으로 언어를 교육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

-앞으로 고려인의 역할에 대한 전망은.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 간의 경제, 문화, 예술, 과학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두 국가를 모두 이해하는 고려인 동포들의 가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어학연수와 문화 체험을 통해 용기 있게 미래를 개척하려는 청년들이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민간과 정부 차원의 정교한 지원 체계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과의 교류는 어떠한가.

▶과거에는 북한과의 교류가 활발했으나, 1992년 우즈베키스탄이 한국과 수교를 맺고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북한 측은 현지에서 철수한 상태다. 한국과의 교류가 깊어질수록 북한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