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대표 문인 신사임당 별세 [김정한의 역사&오늘]

1551년 5월 17일

2017년 1월 24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사임당, 그녀의 화원'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신사임당의 '묵란도'를 보고 있다. 안은나 기자, 뉴스1 DB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551년 5월 17일(조선 명종 6년), 시와 그림, 글씨에 두루 능했던 중기의 대표적 문인 신사임당이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 이원수가 수운판관에 임명되어 평안도로 가 있을 당시, 사임당은 자녀들과 함께 지내던 중 갑작스러운 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사임당은 1504년 강원도 강릉 북평촌(지금의 오죽헌)에서 외가인 신명화와 용인 이씨 사이의 다섯 딸 중 둘째로 태어났다. '사임당'은 중국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이자 현숙한 여인의 귀감이던 태임을 본받는다는 뜻으로 스스로 지은 당호다. 아들이 없던 외가에서 자란 사임당은 유교 경전과 문학에 능통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학문을 접하고 예술적 재능을 키웠다.

19세에 덕수 이씨 이원수와 혼인한 사임당은 현명한 아내이자 엄격한 어머니로 가정을 이끌었다. 4남 3녀를 두었는데, 그중 셋째 아들이 조선의 대성리학자 율곡 이이이며, 막내아들 이우와 큰딸 이매창 역시 시와 그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예술가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

예술가로서 사임당의 업적은 조선 문인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평가를 받는다. 사임당은 자연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데 천재적인 능력을 보였다. 산수화, 포도, 대나무, 매화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으며, 안견의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섬세하고 정교한 필치를 확립했다.

글씨 또한 외가 선조들의 필법을 이어받아 초서와 정서 모두에서 강인하고도 우아한 서체를 구사했다. 한시에도 능하여, 고향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은 '유대관령망친정'과 '사친'은 절제된 언어 속에 깊은 효심을 담아낸 수작으로 꼽힌다.

사임당은 유교적 규범이 강조되던 조선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인물이다. 사임당이 남긴 수많은 시화와 서예 작품은 조선 중기 문화 예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소중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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