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군의 기세를 꺾고 태극기 다시 휘날린 서울 [김정한의 역사&오늘]

1951년 3월 15일

한국전쟁 기간 중 재수복되고 있는 서울. (출처: Hobson, Phillip Oliver, 1951,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51년 3월 15일,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은 북한군과 중공군에게 내주었던 수도 서울을 다시 손에 넣었다. 1.4 후퇴 이후 70일 만의 일이다.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의 반격 능력을 입증하고 공산 진영의 기세를 꺾는 터닝 포인트였다.

같은 해 1월 말부터 시작된 유엔군의 단계적 반격은 '라운드업 작전'과 '킬러 작전'을 거치며 북진의 기틀을 마련했다. 미 8군 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은 적의 주력을 섬멸하고 서울을 포위하기 위해 3월 7일 리퍼 작전을 개시했다. 국군 제1사단과 미 제25사단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은 한강을 도하하여 북측으로 압박을 가했다.

당시 중공군은 보급선의 연장과 계속된 화력 공세에 밀려 서울 사수가 어렵다고 판단, 주력 부대를 이미 서울 북방으로 철수시킨 상태였다. 국군 제1사단 15연대는 15일 오전, 큰 저항 없이 중앙청에 진입하여 태극기를 게양했다.

재탈환된 서울의 모습은 참혹했다. 두 차례나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도심의 80% 이상이 파괴돼 있었고, 시민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신음하고 있었다. 인구 150만의 대도시였던 서울에는 고작 20만 명 남짓한 주민만이 남아 전란의 상흔을 견디고 있었다.

서울 재탈환은 국군과 국민들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 줬다. 전선 고착화: 이후 전선은 38선 인근에서 교착 상태에 빠지며 장기적인 고지전과 휴전 협상의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현대적 화력과 보급력을 앞세운 유엔군을 상대로 중공군의 '인해전술'이 수도 사수에는 한계가 있음도 보여 줬다.

비록 서울은 되찾았으나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날의 승리는 자유를 향한 끈질긴 의지의 산물이었다. 동시에 한반도 전체가 겪어야 할 더 긴 고난의 예고편이기도 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