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서양화 개척자 고희동 화백 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886년 3월 11일

고희동 화백. (출처: 동아일보, 1940,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86년 3월 11일, 한국 근대 미술사의 거대한 전환점을 찍은 춘곡(春谷) 고희동이 태어났다. 그는 유교적 가치관에 갇혀 있던 조선의 회화 전통에 '서양화'라는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은 선구자였다.

고희동의 업적 중 가장 독보적인 것은 한국인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타이틀이다. 한성법어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관료 생활을 하던 그는 1909년 일본 도쿄미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기예'로 치부되던 그림을 배우기 위해 양반 신분으로 바다를 건넌 것은 파격적인 행보였다.

그는 1915년 귀국하며 서양의 유화 기법을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당시 그가 그린 자화상들은 빛의 방향에 따른 명암 처리와 해부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사실적 묘사를 담고 있어, 평면적인 전통 회화에 익숙했던 당시 화단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고희동은 창작에만 머물지 않고 미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1918년 서화협회를 창해 근대적인 미술 단체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휘문·중동의숙 등에서 교편을 잡고 후학을 양성했다. 이는 '화공'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평생 서양화에만 매달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20년대 중반 이후 고희동은 다시 전통 수묵화로 회귀했다. 하지만 이는 과거로의 단순한 후퇴가 아니었다. 서양화에서 배운 원근법과 설채법(채색 기법)을 동양화에 접목하며 '절충식 한국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개척했다.

그의 작품 활동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 속에서도 한국 미술의 근대화를 이끌어 낸 동력이었다. 비록 "서양화를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다"는 일부 비판도 존재하지만, 황무지 같았던 한국 화단에 유화 물감을 처음 칠하고 미술 교육의 체계를 세운 그의 공로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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