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국왕 시해 기도한 가이 포크스 처형 [김정한의 역사&오늘]
1606년 1월 31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606년 1월 31일, 잉글랜드 의사당 지하에 대량의 화약을 매설해 국왕 제임스 1세와 정부 요인들을 몰살하려 했던 이른바 '화약음모사건'(Gunpowder Plot)의 핵심 인물 가이 포크스가 웨스트민스터 궁전 앞에서 처형됐다.
잉글랜드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던 반역 사건의 주모자들은 며칠간에 걸쳐 차례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가이 포크스는 그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처형 대상자였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개신교 군주인 제임스 1세의 통치에 반기를 들고 가톨릭 왕정복고를 꿈꿨으나, 거사 직전 익명의 제보와 수색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됐다.
처형 집행 당일 수천 명의 런던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가이 포크스는 처형대로 끌려 나왔다. 장기간의 고문으로 인해 제대로 걷기조차 힘든 모습이었으나, 그는 죽음을 앞두고 비교적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당국은 당시 가장 잔혹한 형벌인 '교수, 내장 적출 및 사지 절단형'(Hanged, Drawn and Quartered)을 선고했다. 산 채로 목을 매달았다가 죽기 직전에 내려 내장을 꺼내고, 몸을 네 토막으로 나눠 전시하는 무시무시한 형벌이었다. 반역의 대가가 얼마나 처참한지 대중에 각인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집행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가이 포크스는 교수대 올가미를 목에 건 상태에서 사형 집행인이 신호를 주기도 전에 스스로 발판 아래로 몸을 던졌다. 이 충격으로 그의 목뼈는 즉시 골절됐다. 이로써 그는 고통스러운 생포 상태에서의 내장 적출 과정을 겪지 않은 채 즉사했다.
이 처형을 끝으로 화약음모사건의 주모자들은 모두 소탕됐다. 제임스 1세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가톨릭교도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했다. 국회는 국왕의 건재를 축하하며 매년 11월 5일을 반역 음모의 실패를 기념하는 날로 선포했다. 가이 포크스가 남긴 충격은 잉글랜드 종교 분쟁의 역사에 깊은 흉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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