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페미니즘의 초석, 시몬 드 보부아르 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908년 1월 9일

시몬 드 보부아르 (출처: Fritz Cohen, 1967,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08년 1월 9일, 프랑스 파리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가 출생했다. 가부장적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을 거부하고,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권리를 주창하며 현대 페미니즘의 이론적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보부아르는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장 폴 사르트르를 만났고, 두 사람은 평생에 걸친 지적 동반자이자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보부아르는 인간의 존재가 본질보다 앞선다는 실존주의 철학을 여성의 삶에 대입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를 정의할 자유가 있음을 믿었으며, 여성 역시 사회적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창조해야 한다고 믿었다.

1949년 출간된 '제2의 성'에서 그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는 생물학적 차이가 여성의 사회적 열등함을 정당화할 수 없으며, 여성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적, 문화적 교육에 의해 주입된 산물임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역사를 통틀어 남성이 '자아'로 군림하는 동안 여성은 언제나 그에 종속된 '타자'로 규정되어 왔음을 비판했다. 이 방대한 분석은 당시 보수적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바티칸은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기도 했다.

보부아르는 이론에만 머물지 않았다. 1970년대 프랑스 여성 해방 운동(MLF)의 선두에 섰다. 1971년에는 낙태 합법화를 요구하는 '343인의 선언'에 동참하며 실천적 투쟁을 이어갔다. 그는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해방의 필수 조건임을 강조했고, 가사 노동과 모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억압을 공론화했다.

보부아르의 사상은 1960년대 이후 등장한 제2물결 페미니즘의 기폭제가 됐다. 그는 타자로 머물기를 거부하고 주체가 되고자 했던 모든 여성에게 자기 결정권이라는 무기를 부여했다. 1986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전 세계 여성들은 '우리 시대의 어머니'를 잃었다며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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