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강의 기적'의 설계자 콘라트 아데나워 탄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876년 1월 5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76년 1월 5일, 콘라트 아데나워가 프로이센 왕국 라인란트의 쾰른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과 폐허 속에서 서독의 초대 연방총리를 맡아 경제 부흥과 민주주의의 기틀을 닦은 인물이다.
아데나워는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공무원 가정에서 태어나 엄격한 절제와 법치주의 정신을 배우며 자랐다. 법학을 전공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는 1917년 고향 쾰른의 시장으로 선출되며 행정가로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그는 라인강의 교량 건설, 대학 재설립, 녹지 조성 등 쾰른의 근대화를 이끌었으나 1933년 나치당이 정권을 잡자 협조를 거부했다. 이로 인해 시장직에서 해임되었고, 나치 집권기 동안 두 차례나 투옥되는 탄압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민주적 신념을 지켰다.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70대 고령의 나이에 아데나워는 다시 역사의 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의 초대 총리로 선출된 그는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경제장관과 함께 '사회적 시장 경제'를 도입했다. 이 정책은 독일을 단기간에 유럽 최대 경제 대국으로 부활시키는 '라인강의 기적'을 낳았다.
아데나워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외교적 결단이다.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서 서방 진영과의 결속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1955년 나토(NATO) 가입을 통해 서독의 안보를 공고히 했으며, 과거의 숙적이었던 프랑스와 화해를 시도했다. 1963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체결한 '엘리제 조약'은 독일과 프랑스의 오랜 갈등을 끝냈다. 이는 오늘날 유럽연합(EU)의 전신이 되는 결정적인 토대가 됐다.
14년간 총리직을 수행한 아데나워는 1963년 퇴임할 때까지 독일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남았다. 그는 민주주의 경험이 부족했던 독일 국민에게 의회주의의 가치를 심어줬고, 국제사회에서 독일이 다시금 신뢰받는 국가로 복귀할 수 있도록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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