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졔스가 이끄는 중화민국 정부의 타이베이 이전 [김정한의 역사&오늘]

1949년 12월 8일

타이완으로 탈출하는 중화민국 군대 (출처: Unknown author, 1949,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49년 12월 8일, 장제스가 이끄는 중화민국 정부가 마지막 임시 수도였던 청두를 떠나 타이완(대만)의 타이베이로 정부 기능 전체를 옮기는 '국부천대(國府遷臺)'를 단행했다. 중국 대륙에서 국공 내전이 공산당의 승리로 기우는 결정적인 시점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1949년 한 해 동안 중화민국을 이끌던 국민당 정부는 중국 전역에서 인민해방군에 밀려 끊임없이 수도를 옮겨야 했다. 4월에는 수도 난징을 잃었고, 광저우와 충칭을 거쳐 12월 초 청두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놓였다. 장제스는 이미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마오쩌둥의 공산당에 대륙의 주도권을 완전히 내주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949년 12월, 국민당 정부와 군대, 그리고 수많은 지식인과 일반 시민 등 약 200만 명의 인파가 타이완으로의 대규모 이주를 감행했다. 이들은 중화민국의 금괴와 중요 문화재까지 함께 옮겨왔으며, 이는 타이베이에 '망명 정부'를 세우고 재기를 도모하기 위한 필수적인 자산이었다.

장제스 정부는 타이베이를 '임시 수도'로 선포했다. 타이완은 일본의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며,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 정부가 기존 거주민인 본성인(本省人)을 통치하는 새로운 지배 구도가 형성됐다.

중화민국 정부의 타이베이 이전으로 중국을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과 타이완의 중화민국으로 분단됐다. 1950년대 한국 전쟁 발발로 미국의 개입이 확정되면서 타이완 해협의 안보가 강화됐다. 이는 중화민국이 타이완에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후 타이완은 경제 성장을 이루고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독자적인 정체성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중국 대륙 정부가 대만을 자국 영토로 편입하려는 '일국양제' 정책을 추진하며 무력 사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어, 긴장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