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하는 영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탄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875년 12월 4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출처: Unknown author, 1900,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75년 12월 4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체코의 프라하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태어났다. 20세기 독일어권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서정시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첫딸을 잃은 어머니는 그를 여자아이처럼 키웠고, 군인 출신인 아버지는 그를 군사학교에 보내려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방황했던 이 시기는 그의 내면에 깊은 상처와 예민한 감수성을 남겼다. 결국 몸이 허약해 군사학교를 중퇴한 그는 프라하와 뮌헨 등지에서 문학, 철학 등을 공부하며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릴케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철학자 니체도 흠모했던 연인 루 살로메이다. 그와의 만남은 릴케의 정신적, 문학적 성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후 그는 파리로 건너가 조각가 로댕의 비서로 일하며 사물시(Dinggedicht)라는 독특한 시 세계를 확립한 '신시집'을 완성했다.

파리에서의 고독하고 불안한 경험은 자전적 소설 '말테의 수기'에 녹아들었다. 이 작품은 근대인의 소외와 고뇌를 깊이 있게 다룬 걸작이다. 릴케의 문학은 사람과 사물, 풍경의 내면을 응시하고 그 본질을 언어로 이끌어내려는 집요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혼란기를 거친 후, 스위스 뮈조의 성에 정착한 릴케는 마침내 수년 동안 끌어왔던 대작들을 완성한다. 1922년, 그는 '두이노의 비가'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연달아 발표하며 시인으로서의 정점을 찍었다. 이 작품들은 삶과 죽음의 합일, 지상 존재의 시적 변용이라는 릴케의 철학이 집대성된 것으로, 20세기 문학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특히, 서간집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이들에게 위안과 영감을 주는 고전으로 남아있다. 릴케는 1926년 12월, 51세의 나이로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섬세하고도 치열했던 언어는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의 영혼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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