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을 하나로 이은 이집트 수에즈 운하 개통 [김정한의 역사&오늘]

1869년 11월 17일

수에즈 운하 (출처: Unknown author, 1880,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69년 11월 17일,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가 개통했다. 프랑스 외교관 페르디낭 드 레셉스의 주도 아래 10년간의 대역사 끝에 완성된 이 운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항로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는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이 운하가 없던 시절, 유럽에서 인도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약 9000km에 달하는 먼 거리를 항해해야 했다. 그러나 수에즈 운하의 개통으로 항로가 단축되면서 운송 시간과 비용이 대폭 줄어들었고, 이는 곧 세계 무역의 혁신을 불러왔다. 특히 영국이 식민지 인도와 호주, 뉴질랜드를 통치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으며, 이로 인해 수에즈 운하는 곧 제국주의 열강의 핵심 전략 요충지로 부상했다.

운하 건설 자금 조달은 프랑스가 주도했지만, 공사에는 이집트의 농민 노동자 약 2만 5000명이 투입됐다. 건설 초기부터 영국은 프랑스를 견제하며 운하 건설에 부정적이었으나, 일단 개통되자 운하를 가장 많이 이용한 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이었다.

화려한 개통식 뒤에 이집트는 곧바로 심각한 재정난에 빠졌다. 당초 계획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건설 비용과 기대에 못 미친 초기 선박 이용률 때문이었다. 이집트 정부는 유럽 은행에서 고금리로 빌린 부채를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1875년 이집트 총독이 보유했던 수에즈 운하 회사의 지분 44%를 영국이 기습적으로 사들이게 되면서 운하의 실질적인 소유권과 관리권은 영국과 프랑스 양국이 나눠 갖는 구도가 되었다. 이는 이후 이집트가 서구 열강의 경제적, 정치적 간섭에 시달리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수에즈 운하는 단순히 물길을 뚫은 것을 넘어, 전 세계 해운업과 지정학적 판도를 영원히 바꿔놓은 거대한 사건이었다. 개통된 지 150년이 넘은 지금도 이 운하는 여전히 세계 해상 물동량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며 글로벌 경제의 동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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