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 사망 [김정한의 역사&오늘]
1954년 11월 3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54년 11월 3일, 프랑스 니스에서 20세기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인 앙리 마티스가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파블로 피카소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거장이다.
1869년 12월 31일, 프랑스 북부 르 카토 캉브레시스에서 태어난 마티스는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고향에서 서기로 일했다. 21세 때 그는 급성 맹장염으로 요양하던 중 어머니가 사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며 예술에 눈을 떴다. 그는 변호사의 길을 포기하고 파리로 돌아와 줄리앙 아카데미와 에콜 데 보자르에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웠다.
초기 작품은 다소 어두운 색조를 띠었으나, 인상파, 후기 인상파, 특히 세잔의 영향과 일본의 우키요에를 연구하며 점차 자신만의 색채를 찾기 시작했다. 1905년경, 그는 친구 드랭, 블라맹크 등과 함께 야수파를 창시, 미술계를 뒤흔들었다. 이들은 전통적인 색채 규칙에서 벗어나 폭발적이고 강렬한 원색을 대담하게 사용했다.
야수파 운동 이후 마티스는 모로코, 타히티 섬 등을 여행하며 북아프리카의 아라베스크 문양과 동양적인 구성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색면 효과와 보색 관계를 살려 순수한 색채와 단순미를 추구했고, 이로써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70대에 접어든 1941년, 건강이 크게 악화된 그는 붓 대신 가위를 들었다. 움직임이 불편해지자 종이를 오려 붙이는 컷아웃 기법을 창안한 것이다. 단순화된 형태와 밝고 경쾌한 색종이를 이용한 이 말년의 작업은 그의 예술 세계를 완성하는 정점을 이루었다. 특히 니스 근처의 방스에 있는 로사리오 예배당을 장식하며 스테인드글라스와 벽화 디자인까지 총괄한 것은 그의 생애 최고의 역작으로 꼽힌다.
마티스는 죽는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다. 병상에서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고, 심장마비로 숨을 거둘 당시 그의 침대 머리맡에는 가위와 색종이가 놓여 있었다.
acenes@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