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선동꾼 파울 요제프 괴벨스 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897년 10월 29일

파울 요제프 괴벨스. (출처: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97년 10월 29일,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독일 라인란트의 레트에서 태어났다. 나치의 선동가로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그는 노동자 계층 가정 출신이다. 어릴 적 앓은 골수염으로 인해 평생 다리를 절었으며 왜소한 체구였다. 이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학업에 몰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문학과 언론에 대한 야망은 좌절을 겪었다.

그의 삶의 전환점은 1925년 나치당에 입당하면서 찾아왔다. 그는 곧 아돌프 히틀러를 만나 그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하고 충성을 맹세하며 광신도로 변모했다. 괴벨스는 자신의 타고난 웅변술과 탁월한 선동 능력을 인정받아 1926년 베를린 대관구 지도자에 임명되며 중앙 무대에 등장했다.

1933년 히틀러가 총리에 오르자, 괴벨스는 국가대중계몽선전장관이라는 막강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나치 정권의 선전 및 미화를 전담하며 현대적인 대중 매체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그의 선전 전략은 가히 혁신적이었다. 그는 라디오를 대량 보급하여 국민들에게 나치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했고, 세계 최초로 정규 TV 방송을 정치 선전에 활용했다.

"선전은 대중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반복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단순하고 감정적인 구호와 거짓 정보(가짜 뉴스)를 끊임없이 주입해 독일 국민들을 집단 최면 상태에 빠뜨렸다. 특히, 그는 전쟁의 위기와 국민적 분노를 유대인에게 돌리는 증오 선전과 반유대주의 정책의 핵심적인 설계자였다. 1941년 유대인에게 다윗의 별 배지 착용을 강제한 것도 그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소련군이 베를린을 포위하자, 괴벨스는 히틀러의 유언에 따라 잠시 총리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히틀러가 자살한 다음 날인 1945년 5월 1일, 그는 아내 마그다와 함께 여섯 명의 자녀에게 수면제와 청산가리를 먹여 살해한 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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