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해방군, 티베트 진주 [김정한의 역사&오늘]
1950년 10월 7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50년 10월 7일, 중국 인민해방군(PLA)이 티베트 동부 지역을 향해 대규모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 이는 창두 전투로 불리며, 티베트 정부가 실질적으로 통치하던 지역에 중국 공산당의 군사력이 최초로 침공한 사건이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후, 마오쩌둥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티베트를 중국의 '잃어버린 땅'으로 간주하며 수복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으며, 서구 열강과 제국주의 세력의 영향으로 잠시 분리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인민해방군은 수천 명의 병력을 동원해 티베트 정부의 주요 방어 거점인 창두(Chamdo) 지역으로 진격했다. 당시 티베트군은 현대적인 무기와 훈련이 부족한 상태였으며, 병력 규모 면에서도 인민해방군에 비해 현저히 열세였다. 인민해방군은 수일 만에 창두를 포위하고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티베트 정부는 침공 직전과 직후 국제 사회에 지원을 호소했으나, 당시 세계는 한국 전쟁이라는 더 큰 국제적 분쟁에 집중하고 있었다. 서구 열강과 유엔은 중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고자 했으며, 티베트에 대한 실질적인 군사적 또는 정치적 지원을 제공하지 않았다.
창두 전투에서의 완패는 티베트 정부가 중국과 협상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군사 작전의 성공을 바탕으로, 중국은 티베트 대표단을 베이징으로 불러 강압적인 협상을 진행했다. 이 협상의 결과로 1951년 5월 '중앙인민정부와 티베트 지방정부 간의 티베트 평화 해방 방법에 관한 협정'(17조 협정)이 체결됐다.
이 협정을 통해 티베트는 외교권과 군사권을 중국 중앙정부에 넘겨주고, 중국의 주권을 인정하게 됐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티베트 문제의 근원이 되는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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