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도 음악이다…'4분 33초' 초연 [김정한의 역사&오늘]

1952년 8월 29일

존 케이지 '4분 33초' 악보. (출처: John Cage, 1952,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52년 8월 29일, 현대 음악사에 길이 남을 기이한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뉴욕주 우드스톡의 매버릭 콘서트 홀에서 작곡가 존 케이지의 전위적인 작품 '4분 33초'가 초연된 것이다.

이날 공연은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의 연주로 진행됐다. 튜더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의자에 앉은 뒤, 스톱워치를 누르고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피아노 건반은 울리지 않았다. 그는 총 3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의 악장 사이마다 피아노 뚜껑을 닫았다 여는 것으로 악장 구분을 표시했다.

객석에서는 이 파격적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과 당혹스러움이 감돌았다. 일부 관객들은 헛기침을 하거나 웅성거렸고, 어떤 이들은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공연장 안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4분 33초'는 전통적인 음악의 정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작품이었다. 케이지는 음악이 단순히 작곡가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소리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침묵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리, 즉 관객의 기침 소리, 좌석이 삐걱거리는 소리, 바람 소리, 빗소리 등 주변의 모든 환경음이 곧 음악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 작품은 청중에게 '무엇이 소리이고, 무엇이 음악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초연 당시의 충격과 논란에도, '4분 33초'는 이후 현대 예술과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곡은 전통적인 연주와 청취 방식에서 벗어나 우연성과 비결정성을 강조하는 존 케이지의 예술 철학을 상징하는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이 작품은 '침묵' 자체를 예술의 한 요소로 끌어들여 미니멀리즘, 개념 예술 등 후대 예술 사조에 영감을 줬다.

'4분 33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현대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침묵을 통해 소리를 듣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음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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