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정부에서 임시 정부로…프랑스 해방의 서막 [역사&오늘]

1944년 7월 8일, 프랑스 임시정부 수립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 수반 샤를 드골 장군(가운데) (출처: Unknown author (Keystone-France), 1945,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44년 7월 8일, 알제(당시 프랑스령 알제리)에 본부를 두었던 프랑스 민족 해방 위원회(CFLN)가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GPRF)로 공식 전환을 선언했다. 이로써 나치 독일의 점령 하에 있던 프랑스의 해방과 전후 재건을 위한 중추적인 발판이 마련됐다.

GPRF 수립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전개되고 연합군의 프랑스 본토 진격이 가속화되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의 격동 속에서 프랑스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한 이후, 샤를 드골 장군을 중심으로 한 자유 프랑스군은 런던에서 망명 정부의 역할을 수행하며 프랑스 저항 운동을 이끌어 왔다. 이후 1943년 알제에서 결성된 CFLN은 자유 프랑스군과 드골에 대한 지지를 기반으로 프랑스 국내 저항 세력을 통합하며 점차 합법적인 프랑스 대표 정부로서의 위상을 굳혀갔다.

GPRF 수립은 프랑스 공화국의 정통성과 주권이 살아있음을 천명하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연합국들에도 프랑스의 정치적 안정과 전후 질서 재편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GPRF는 드골 장군을 수반으로 연합군과 협력해 프랑스 해방 작전을 지휘하고, 해방된 지역의 행정을 재건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GPRF는 단순히 전쟁을 수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후 프랑스의 민주주의를 재건하고 사회 개혁을 추진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천명했다. 이는 비시 정권의 협력주의와 독일 점령으로 인해 훼손된 프랑스의 명예를 회복하고, 공화국의 가치를 재정립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GPRF의 수립은 프랑스 파리 해방(1944년 8월)을 비롯한 전 프랑스 해방의 발판이 됐다, 이후 프랑스 제4공화국 수립으로 이어지는 전후 프랑스 정치사의 중요한 초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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