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군인의 애국심과 열정으로 하룻밤 만에 작곡된 국가 [역사&오늘]

4월 24일,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 작곡

'라 마르세예즈'의 삽화를 표지로 한 잡지. (출처: Éliane Daphy, 1912,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792년 4월 24일, 프랑스는 혁명의 격랑 속에서 프랑스의 심장을 뜨겁게 울리고 전 세계에 자유의 횃불을 밝힌 불멸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가 탄생했다.

18세기 말, 왕정의 쇠퇴와 자유, 평등, 박애의 숭고한 이상은 유럽 대륙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물결로 번져가고 있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이 노래는 놀랍게도 이 웅장하고 투쟁적인 곡의 작곡가는 당대 저명한 음악가가 아니었다.

라 마르세예즈는 스트라스부르에 주둔하던 공병 대위,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릴의 손에서 탄생했다. 프랑스의 오스트리아 공격을 앞두고 루제 드릴은 스트라스부르 시장인 디트리히 남작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조국을 위해 싸우러 나서는 병사들을 위한 군가 작곡을 제안 받았다.

루제 드릴은 그날 밤 벅찬 감동과 애국심에 사로잡혀 밤새도록 작곡에 몰두했다. 새벽녘, 그는 '라인 군대를 위한 전쟁 찬가'(Chant de guerre pour l'armée du Rhin)라는 제목의 장엄한 노래를 완성했다. 이 곡은 곧 스트라스부르 전역에 울려 퍼지며 혁명군의 사기를 드높였다.

이 노래가 '라 마르세예즈'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서 파리로 진군하던 의용병들이 이 노래를 열렬히 부르면서 파리 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사람들은 이 곡을 '마르세유 사람들의 노래'라는 의미의 '라 마르세예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 혁명의 상징이 됐고, 1795년에는 프랑스의 국가로 공식 채택됐다. 격렬하고 웅장한 멜로디, 자유와 조국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담은 가사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강렬한 울림을 줬다. 한 군인의 애국심에서 비롯된 이 노래는 프랑스의 영광과 고난의 역사를 함께하며 오늘날까지도 프랑스인의 가슴속에 뜨겁게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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