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 시대의 서막을 알리다 [역사&오늘]

3월 5일, 윈스턴 처칠의 철의 장막 연설

윈스턴 처칠. (출처: United Nations Information Office, New York(1942),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46년 3월 5일,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철의 장막'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대에 유럽을 상징적, 사상적, 물리적으로 나누던 경계를 의미하는 용어였다.

처칠은 미국 미주리주 풀턴의 웨스트민스터 대학교에서 행한 '평화의 원동력'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발트해의 슈테틴에서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까지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의 장막'이 내려왔다"고 선언했다. 이는 소련의 영향력 아래 놓인 동유럽의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1940년대 중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같은 연합국이었던 서방 세계와 소련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소련은 동유럽 국가들에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처칠은 이러한 소련의 팽창주의를 강력하게 경계했다. 실제로 소련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돼 냉전이 종식되기 전까지 공산 진영을 이끌며 자유 진영과 대립했다.

처칠은 소련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 놓인 동유럽 국가들을 '철의 장막'이라는 은유로 표현하며, 이들 국가가 자유세계와 단절됐음을 강조했다. 그는 소련이 동유럽을 넘어 더 넓은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려 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이를 경고하며 자유세계의 단결된 대응을 촉구한 것이었다.

처칠의 '철의 장막' 연설은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냉전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으며, 서방 세계가 소련의 팽창주의에 맞서 단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처칠은 특히 미국과 영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특별한 동맹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친소 분위기가 남아 있던 서방 사회에서 처칠의 발언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처칠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다가올 냉전 시대에 대한 대비를 촉구했으며,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의 연설은 국제사회에서 지도자의 통찰과 역할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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