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 러시아 붕괴의 도화선이 된 노동자들의 궐기 [역사&오늘]

1월 22일, 러시아에서 피의 일요일 사건 발생

'피의 일요일' 사건 상상도. (출처: Ivan Vladimirov(1940),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05년 1월 22일,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피의 일요일' 사건은 러시아 역사의 중요한 분수령이 됐다.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던 노동자들을 향한 황실 경비대의 무자비한 발포는 제정 러시아의 붕괴를 앞당기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1905년 러시아는 러일 전쟁의 패배, 심각한 경제난, 그리고 사회 불평등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노동자들은 극심한 빈곤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시달리며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은 차르 니콜라이 2세에게 개선을 요구하며 평화적인 시위를 계획했다.

노동자들은 황궁으로 향하며 헌법 제정, 노동 시간 단축,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황실 경비대는 무자비하게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결국 수천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고, 로마노프 왕조의 차르 정권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극대화시켰다. 이후 러시아 전역에서 파업과 시위가 확산하면서 제정 러시아는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차르 정권의 무능함과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차르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완전히 사라졌다. 또한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은 사회주의 운동에 불을 지폈으며, 권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정신을 고취시켰다.

피의 일요일 사건을 계기로 1905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해 로마노프 왕조의 권력은 약화했고, 1917년 2월 혁명과 같은 해 10월 혁명으로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로마노프 왕조는 완전히 몰락했다.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들은 1918년 볼셰비키에 의해 처형됐고, 로마노프 왕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