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상식①] 추석 전통풍속 어떤 게 있나

추석 '슈퍼문'. 2015.9.26/뉴스1 ⓒ News1
추석 '슈퍼문'. 2015.9.26/뉴스1 ⓒ News1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송편도 차례상도 예전과는 풍경이 많이 달라졌지만, 추석은 여전히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 중 으뜸으로 치는 명절이다. 우리 조상들은 음력 팔월 보름인 추석에 가을 첫 햇곡식으로 음식을 하고,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에 새 추동복을 해 입으며, 가족과 친지, 한 동네 사람들이 모여 민속놀이를 즐겨 왔다.

가을 추수를 완전히 끝내고 하는 서양의 '추수감사절'과는 달리 추석은 첫 수확제에 해당한다. 풍요를 가져다 준 조상신에 제사를 모시고 자연에 감사하는 날이 바로 추석이다.

추석은 가배(嘉俳), 가배일(嘉俳日), 가위, 한가위,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도 하며, 가위나 한가위는 순수한 우리말, 가배는 가위를 이두식의 한자로 쓰는 말이다.

추석(秋夕)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나아가서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니 달이 유난히 밝은 좋은 명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중국인들은 추석 무렵을 중추(中秋) 또는 월석(月夕)이라 하는데, '예기'(禮記)에 나오는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추석 보름달. 2016.9.14/뉴스1 ⓒ News1

특히 추석날 밤에는 달빛이 가장 좋다고 해서 월석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중엽 이후 한자가 성행하게 된 뒤 중국인이 사용하던 중추니 월석이니 하는 말을 합하고 줄여서 추석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중추절이라는 용어는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中秋), 종추(終秋)로 나누었을 때 추석이 음력 8월 중추에 해당하므로 붙은 이름이다.

추석의 시원(始原)이나 유래에 대한 명확한 문헌 자료는 없다. 중국의 '수서'(隨書) 동이전(東夷傳) 신라조(新羅條)에는 "8월 15일이면 왕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쏘게 하여 잘 쏜 자에게는 상으로 말이나 포목을 준다"라고 돼 있다.

또 '구당서'(舊唐書) 동이전 신라조에도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이면 서로 하례하는 예식을 여는데 왕이 잔치를 베풀고 또 해와 달의 신에게 절을 한다. 팔월 보름이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쏜 자에게는 상으로 포목을 준다. 신라인들은 산신(山神)에 제사 지내기를 좋아하며 8월 보름날이면 크게 잔치를 베풀고 관리들이 모여서 활을 잘 쏜다"라고 기록돼 있다.

우리 문헌에는 12세기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추석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나지만 그 시작을 밝히는 내용은 아니라는 게 학계 의견이다. 다만 이 자료를 통해 추석이 신라 초기에 이미 자리 잡았으며,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년조에 기록된 추석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왕이 육부(六部)를 정한 후 이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편을 짜고, 7월 16일부터 날마다 육부의 마당에 모여 길쌈을 했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게 하고 8월 보름에 이르러 그 공(功)의 다소를 살펴 지는 편은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모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하였으니 이를 가배라 한다. 이때 진 편의 여자들이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 하였는데 그 소리가 구슬프면서 아름다웠으므로 뒷사람들이 그 소리를 인연으로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

여기서 여자들이 패를 나누어 길쌈을 했다는 것은 두레길쌈의 효시로 볼 수 있는데, 당시 길쌈이 이미 보편화됐다는 것을 시사한다.

추석 연휴 시작을 이틀 앞둔 28일 오전 광주 북구 중흥어린이집 앞 효죽공에서 어린이들이 한복을 입고 전통놀이인 윷놀이를 하고 있다. (광주 북구 제공) 2017.9.28/뉴스1 ⓒ News1

사실 추석은 앞으로 다가올 겨울의 의복을 장만하는 시기로도 볼 수 있다. 설빔, 단오빔과 함께 추석빔이라고 해서 계절이 바뀌는 때에 새 옷을 해 입는다. 옷감을 짜는 풍속은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부터 있었는데 세시명절은 농경시대에 적응해 생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세시명절인 한가위는 고대 농경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신라시대에는 이미 일반화된 명절로 자리 잡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추석의 관습이 가락국에서 왔다고 했다. 또 일본인 승려 원인(圓仁)은 그의 저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당시 산동 근방에서 살던 신라인들이 절에서 가배명절을 즐겼던 사실을 기록했다. 특히 그는 신라인들이 발해와의 싸워 이긴 기념으로 추석을 명절로 즐겼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신라시대에 이미 세시명절로 자리 잡은 추석은 고려에 와서도 큰 명절로 여겨져 원정(설날), 한식, 단오, 동지 등과 함께 9대 속절(俗節)에 포함됐다.

널뛰기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2015.9.6/뉴스1 ⓒ News1

우리나라에서 추석 명절을 비롯한 세시명절의 위상은 근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 세시풍속이 농경사회의 의례로서 농사라는 생업과 직결돼 있었던 것만큼,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부터는 세시명절도 약화하기 시작했다. 추석 또한 전통적인 성격이 퇴색돼 차례와 성묘하는 날로 축소됐다. 다만 국가 차원의 공휴일로 지정됨으로써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에서 큰 명절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추석에 행하는 의례로는 '올베심리'와 '풋바심'이 있다. 올베심리란 주로 호남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올벼 천신(薦新)을 말한다. 올기심리, 올계심리, 오리십리, 올비신미라고도 부른다.

올벼란 '일찍 수확한 벼'를 일컫는 것으로, 벼가 다 여문 무렵 혹은 채 여물기 전에 여문 부분을 골라 찧은 쌀이다. 벼가 덜 여물면 미리 솥에 볶아서 말려 두었다가 밥을 짓는다. 술과 조기, 햇병아리, 햇무 같은 것들을 상에 차려 조상에게 바치고 온 집안 식구가 모여 그 음식을 나눠 먹는다.

미리 베어온 벼포기는 안방 윗목 벽에 가로 묶어 두기도 한다. 호남 지방에서는 농사를 짓지 않는 집에서도 벼포기를 사다 걸어둘 정도로 이 풍속은 일반화돼 있다. 올벼심리는 대개 추석 무렵에 올리지만 '벼가 익을 무렵'에 올리므로 그 시기는 일정치 않다.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어린이들이 다가오는 추석을 맞아 차례상을 앞에 두고 절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2017.9.25/뉴스1 ⓒ News1

벼뿐만 아니라 다른 곡식을 함께 걸어두기도 한다. 추석을 전후해서 잘 익은 벼, 수수, 조 같은 곡식의 이삭을 한 줌 베어다가 묶어 기둥이나 문설주에 걸어두는데 이것을 올게심니라고도 한다.

올게심니를 할 때에는 술과 음식을 차리고 이웃을 청해서 주연을 베풀기도 한다. 올게심니한 곡식은 다음해에 씨로 사용하거나 떡을 해서 사당에 천신하거나 터주를 비롯한 가신(家神)에게 올렸다가 먹는다. 올게심니는 이듬해 풍년이 들게 해달라는 기원의 뜻과 풍농을 예축하는 의미가 있다.

경북 안동을 비롯한 영남에서는 올베심리와 비슷한 것으로 풋바심이 전한다. 논 가운데 누렇게 잘 익은 부분을 지게로 한 짐 정도, 벼로는 두 말 정도, 쌀로는 한 말 정도 미리 베어서 탈곡한다. 이 쌀로 밥을 짓고 제물을 갖춰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올베심리와 같다.

또 다른 추석의 풍속으로 '반보기'와 '근친'(覲親, 시집간 딸이 친정가서 부모를 만나는 것)이 있다. 충남 지역에서는 추석 무렵에 반보기를 하는데 이는 반나절 동안 만나는 것을 말한다. 늦여름이 다 가도록 농사에 바빴던 일가 친척들이 추석 무렵이면 서로 약속해 양편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다.

추석연휴를 앞둔 29일 서울역에서 귀성객들이 밝은 표정으로 고향가는 열차를 타러 이동하고 있다. 2017.9.29/뉴스1 ⓒ News1

예전에는 시집간 딸이 이 반보기를 통해 친정식구와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지역에서 추석 전후가 되면 이런 반보기가 아니라 '온보기'로 새색시들이 근친가는 일이 많았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은 "개별화된 현대인들의 불안하고 초조한 심리 상태는 '소속감'이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며 "추석 명절을 통해 한 가족, 한 마을의 일원이라는 강력한 소속감과 연대의식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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