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5000원 CD 한장에 인세 20원…도 넘은 예술계 불공정계약

[특별좌담 상(上)]"예술가도 사람이다, 예술행위도 노동이다"
손아람 작가, 장지연PD, 김종휘 변호사, 권혁빈 미술평론가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문화문제대응모임 장지연 대표 사무실에서 문화계 각계 관계자들이 '기획사, 영화사, 음반사, 대형출판사의 갑질에 허덕이는 젊은 예술가들의 현실과 해결책'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휘 변호사, 장지연 PD, 권영미 뉴스1 기자, 손아람 작가, 권혁빈 미술평론가. 2017.8.3/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주말과 휴일은커녕 잠잘 시간도 없이 일했지만 크레딧(제작진 명단)에 이름도 올리지 못한 방송·영화 음악제작사 로이엔터테인먼트의 작곡가들, 총 400만원에 불과한데도 영화가 제작이 중단됐다는 이유로 출연료를 받지 못하는 20여 명의 '아버지의 전쟁' 출연 단역배우들….

최근 물밑에서 광범하게 이뤄지던 예술계 불공정 노동이 이들 피해자의 폭로로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예술'이란 허울 아래서 '열정'을 볼모 삼아 이뤄지던 관행들을 더는 참지 못하고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뉴스1은 지난 3일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그간 '로이엔터테인먼트의 부당계약 논란'과 영화 '아버지의 전쟁' 임금체납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데 발 벗고 나서온 '문화문제대응모임'(이하 문화대응)과 좌담회를 가졌다.

문화대응의 공동대표 손아람 소설가, 문화대응 공동대표이자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위원인 장지연 프로듀서(PD), 김종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 권혁빈 미술평론가는 이 자리에서 자신과 주변인들이 겪은 부당한 예술노동 실태를 고발했다.

또 노동과 예술가에 대한 인식변화의 필요성, 자본가(사용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을 법적, 제도적 개선방안을 촉구했다. 뉴스1은 이날 좌담에서 제기된 예술가의 열악한 노동 실태와 그 해결책을 각각 상, 하 두 편으로 나누어 싣는다.

문화대응의 젊은 예술가들은 '1만5000원 CD 한장에 인세 20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급여' '송출해주는 대신 저작권 빼앗기' 등 우리 사회 예술가들의 처참한 노동 현실과 예술계 내 '갑질'에 대해 고발했다.

손아람 작가.ⓒ News1 박세연 기자

▶뉴스1=문학출판, 영상예술, 미술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모였다. 각자 경험한 불공정 노동관행이나 소위 '갑질'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손아람(이하 손)=나같은 경우는 소설가가 되기 전에 음악도 하고 후에는 영화작업도 해서 여러 분야의 불공정을 다 경험했다. 음악할 때도 시디(CD) 한 장이 1만5000원인데 인세를 한 장당 20원에 7년간 계약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첫 소설을 써서 출판사를 찾아가니 "등단제도를 거치지 않았으니까 인세를 포기한다면 책을 내주겠다"고 했다. 영화로 와서 시나리오 작업을 했을 때는 집필은 물론이고 매주 빡빡한 일정을 짜 회의하고, 감독의 의견을 듣고, 수정하고, 다시 회의하고, 고치고 하는 작업을 1년간 했는데 총 100만원을 받았다.

◇1만5000원 중 인세는 20원, 자신이 해고된지도 모르고 근무

▶권혁빈(이하 권)=전시기획자는 기관이나 단체 등에 소속되면 노동법 적용을 받는데, 실제로 단속해보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적발될 곳이 많다. 예를 들어 어떤 비영리전시공간 어시스턴트 월급이 80만원이다. 최저임금위반이다. 예전에는 40만원이었다고 한다. 상업 갤러리의 직원들도 과거에는 월 100만원도 못받았다. 기본적인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한다.

지난해 만났던 한 보조큐레이터는 건강보험 관리공단에 일이 있어 전화하고서야 자신이 2주전에 퇴사처리됐다는 것을 알았다. 한달 전 해고를 통지하는 것조차 사용자가 지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대표한테 말했더니 그제서야 “너 나오지 마" 이렇게 말했다더라.

▶뉴스1=미술 작가들은 작품이나 노동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는가.

권혁빈 미술평론가ⓒ News1 박세연 기자

▶권=작가들도 보장된 권리가 뚜렷이 없다. 작가와 전시기획자와의 관계설정이 정립되지 않았고 전시도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하는 작가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전시회에서 바닥에 깔아놓는 식의 작품을 관객이 밟아 파손되었는데 전시공간에서 책임을 안지는 경우도 있다. "어쩔 수 없다. 너네가 알아서 챙겨야한다" 이런 식으로 화랑이 뻔뻔하게 나오기도 한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 어떤 문제든 무마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품 거래도 비공개적으로 하고 감정도 은밀하게 이뤄진다. 그림을 구입했을 때 진짜인지 가짜인지 믿을 근거는 화랑에서 주는 감정서 하나밖에 없는데 감정기관을 화랑들이 같이 운영한다. 가짜를 샀는데 책임을 물으려고 하면 진위여부를 구매자가 입증해야 한다. 미술계의 문제는 이렇게 아무런 질서가 없다는 것이다.

▶장지연(이하 장)=정부가 추진하는 '미술품 유통에 관한 법률안'(미술품 유통법)이 (유통에 한해서지만) 그 관행을 고칠 수 있지 않나.

▶권=‘위작’ 유통을 근절시키겠다는 법이지만 이 그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짜라고 해도 판매인 쪽에서 가짜인 것을 알고 팔았는지 이런 부분들을 구매자가 직접 증명해야 한다. 원안은 화랑과 감정사에서 입증 책임을 지는 것으로 되어있었는데, 수정되었다. ‘과도한 규제’라는 것이 이유다.

▶손=국내 한 공영방송은 독립PD들이 만든 다큐멘터리를 "송출해줄테니 저작권을 갖게 해달라" "독립PD가 정부에서 예산을 따오면 송출하는 대신 그 보조금의 40%를 떼겠다" 이렇게 요구했다. 로이엔터테인먼트에서도 회사측이 저작권 이전을 작곡가에게 요구하고, 아니면 높은 비중의 수익을 회사측이 갖겠다고 요구하는 등 모든 분야의 모든 단계에서 불공정 계약이 이뤄진다.

▶장=방송국같은 유통플랫폼과 로이 사태에서의 음악감독과 같은 중간 브로커들이 요구하는 비용이 문제다

김종휘 변호사 ⓒ News1 박세연 기자

▶김종휘(이하 김)=나는 서울시에서 '문화불공정상담관'으로 일하며, 예술업계의 불공정 사례를 모아서 실태조사도 하고 해결의 도움도 주는 역할을 한다. 각 예술업계의 분야마다 그 불공정의 형태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불공정계약의 특징이 있는데, '수입분배의 불공정' '2차적 저작물을 포함한 저작권의 포괄적 양도요구' '부당한 계약해제' 세 가지다.

▶뉴스1=그런데 왜 그런 열악한 조건에도 일을 하는 건가.

▶손=예술가들이 그렇게 안하면 그 분야에 진입을 못한다고 생각하니 '입장료'라 생각하고 내고 들어가는 거다. 사용자도 예술가를 근로자로 보지 않는 데다가 예술가 스스로도 업계에서 자신의 가치가 어느 정도일지 잘 모르기도 하고….

◇순수예술 분야와 산업에 편입된 예술 구분해 보호해야

▶뉴스1=과거에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나 연극배우 김운하 씨처럼 열악한 예술환경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도 있는데 법률로 보호되는 것은 없나.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나.

장지연 PD ⓒ News1 박세연 기자

▶장=최고은 씨가 돌아가신 후 예술가도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겨나 '예술인복지법'같은 법과 제도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렇게 국가에서 기초수급은 하게 해주겠다는 복지에 대한 인식은 생겨났지만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문제는 여전하다. '복지'와 '불공정관행', 둘은 다른 문제다.

시장이 형성된 예술분야가 있고 시장 형성에 실패한 분야가 있다. 영화계와 달리 연극계나 순수예술 분야는 시장 자체가 형성이 안되었다. 최고은 작가는 독립영화쪽이었고 독립영화의 형편도 순수예술과 닮아있다. 이들은 형성된 시장도 없고 전혀 돈이 안 되는 장르인데, 이게 예술의 기초이기에 국가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순수예술 분야는 보호로 가고, 산업화된 예술은 육성이나 진흥으로 가야 한다.

상업영화의 경우도 기획·개발된 시나리오 중 극장에 걸리는 게 1%도 안되고 나머지는 다 ‘엎어지는’(제작중단) 현실이다. 문제는 그 노동에 관여한 이들을 다 구제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생존은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영화 산업의 기본은 결국 '결과주의'라 대부분의 작가들이 생활이 많이 힘들다. 이런 것은 구조적인 문제점이기에 (예술인복지법 제정 후에도) 전혀 개선이 안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손=사업자가 위험부담을 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영화든 프로젝트든 사업자가 노동에 대한 위험을 부담으로 안지 않는 반면 성공의 경우 수익은 사업자에게만 간다. 노동을 제공하는 쪽에서 위험을 부담하고 그것을 지렛대삼아 사업자가 배를 불리는 것이다.

제작중단된 '아버지의 전쟁' 경우도 감독은 5년 이상 준비하고 스태프는 1년간 일했는데 제작사나 투자사는 임금미지급의 방식으로 손실을 피한다. 일반 자영업자가 50% 망한다는데 이들이 고용인들에게 월급을 지급하지 않거나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가. 예술만 유독 '엎어졌으니 임금을 받지 못한다' '받지 못할 수도 있는 거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이 퍼져 있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까지 바라냐는 인식도 문제

▶장=예술행위를 '노동'으로 보지 않는 일반인의 인식도 문제다.

▶권='예체능을 전공하면 집이 부자일 것이다'는 선입견도 한몫하는 것 같다. 입시과정에서부터 대학 등록금까지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과정을 버티는 것 자체가 재력을 인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예술인이 어렵다고 아무리 말해도 일반인들이 쉽게 공감 못하는 것 같다.

▶손=“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 아니냐. 나도 어렸을 때 만화, 미술, 음악 좋아하고 그랬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기 위해 꾸역꾸역 하기 싫은 노동을 하고 있다”는 일반인의 정서가 굉장히 강하다. 좋아하는 일하면서 돈까지 받으려고 하는 거는 오히려 불공평하지 않냐는 거다. 또 “'이 일을 해도 최저임금도 못받는다'고 하면, 안하면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말한다.

▶권=미술계에서는 2014년에 소위 ‘아티스트 피’ 논쟁이 붙으면서 작업활동도 노동이라는 주장들이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도 "굳이 예술이 노동이 되어야 하냐"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시각은 행정에도 반영되어 있다. 공공기관에서 지급하는 창작지원기금 사용내역에서 창작자에 대한 인건비 항목이 없다.

모든 창작활동에는 준비기간이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은 노동 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돈을 받고 글을 쓰는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것으로 받는 대가가 현실성이 없으니 1년에 글 써서 벌은 돈이 남들 한달 월급 수준이다. 오히려 “써줬으니 나한테 돈내야 하는 거 아니냐. 감사할 줄 알아야한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장=예술인의 권익이나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예술이 노동'이라는 것이 먼저 설득돼야 할 것 같다. 하나 더 얘기하면 2012년부터 시행된 예술인복지법이 논의될 당시는 지금보다 '예술인' 범위가 넓었다. 그런데 각 분야별로 데뷔한지 1년도 안되는 경력도 짧은 이가 어떻게 예술인이냐, 이런 식으로 강력한 항의가 들어왔다. 어떤 단체는 10년 이상 경력이 있어야 가입이 가능한 자기들 기준에 맞추자고 주장했다. 복지를 위해서는 '예술이 노동인가'부터 '예술인이 누구인가'까지 규정되어야 할 것이 많다.

▶손=인격모독 소위 '갑질'도 빈번히 일어난다. 한쪽이 (힘이) 미흡하면 사업자 입장에서는 함부로 하게 되어 있다. 다만 문학은 다른 분야보다는 갑질이 덜 일어나는데 이유는 작품이 잘 팔리지 않는 문인이라도 정신적으로 가치있는 일을 한다고 보고 '선생님' 대접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촬영이나 편집일은 기술직으로 인식되어 공정한 계약도 못하고 인격모독도 자주 일어난다. 최근 한 유명 영화편집회사 소속 편집기사들은 임금교섭에 계약 해지로 응답한 회사 대표를 노동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월 200시간 이상을 일한 이들은 겸업금지 계약에 묶여 영화 일거리까지 회사에 가져다 바치고도 월급은 100만원이었다. 이를 불합리하다고 생각해 임금교섭을 다시 하자하니까 "너희 말고 할 사람 많다"는 대답이 돌아와 노동법 위반으로 고발한 거다.

▶장=기초예술은 답이 잘 안보인다. 국가재원에 기대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품이 몇억원인 잘나가는 예술인도 있지만 노동착취 당하는 예술인도 있다는 것을 일반인은 잘 모른다. 예술인복지법 초기에 사실 복지기금에서 재원을 갖고 오면 어떨까 말이 있었고 이를 협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보통 저소득층이나 독거노인을 복지대상으로 지정하는데는 저항이 없지만 예술인을 복지 대상으로 정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법과 정서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에 모두 부정적이었다.

▶뉴스1=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예술가들이 여러 가지 부업을 한다는데.

▶손=나는 과외도 하고 댓글알바(아르바이트), 공공기관 책자 만들기 등을 해봤다. 아는 단역배우가 나온 영화를 보러 갔는데 자기가 나온 영화가 걸린 영화관의 매표소에서 표를 파는 알바를 하고 있더라.

▶장=신진예술가들 대부분이 편의점 직원, 배달, 서빙 등을 한다. 연극인들은 밤에는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오전에 우유나 신문을 배달하는 경우가 많다.

▶권=무슨 뇌과학연구소에서 시티(CT) 기계 안에서 잠을 자면 20만원 준다고 해서 실험대상이 된 적도 있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불행 경쟁’으로 흐르는 것 같아서 말하기도 민망하다.

☞[특별좌담]은 하(下)편인 ''한류팬 1억명 확대' 이런 정책 싫어요…예술계 불공정 해결책은'에서 계속됩니다.

ungaung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