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가을 햇살과 버섯

전호제 셰프

전호제 셰프

선선한 바람이 찾아온다는 처서가 돼도 무더위와 습한 날씨는 계속 이어진다. 이젠 시원한 냉면이나 비빔국수로도 그다지 입맛이 돌지 않는 것 같다. 여름이 다시 온 듯한 늦더위에 입맛은 혼돈의 계절을 넘어 가을로 성큼 들어섰다.

몇주 전 서울의 한 왕릉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왕릉 주위는 빽빽하게 조성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숲이 만드는 습도는 마치 사우나 안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아름드리나무 아래 이름 모를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폭염과 이어진 소나기로 습기가 가득한 날씨는 버섯이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만든 것 같았다.

자연산 송이를 채취하는 모습. (경남 거창군 제공)
습한 날씨는 버섯이 자라기 좋은 환경

더위와 비가 적절하게 섞이면 자연산 버섯에는 좋은 생육환경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버섯 재배는 기술집약적인 산업이 됐다고 한다. 일부 자연산을 제외하면 스마트팜에서 습도, 온도가 자동으로 조절돼 자연의 영향을 덜 받는다. 이에 버섯 가격도 꽤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해졌다. 어릴 때 버섯이라면 말린 표고버섯을 물에 불려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신선 버섯이 훨씬 많아졌다.

요즘 같은 고물가에도 버섯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소불고기용 고기를 조금만 준비해도 버섯전골을 만들 수 있다. 육수를 따로 준비하지 않고 여러 가지 버섯과 불고기를 함께 넣어 끓여준다. 국물 맛을 위해 후추를 좀 더 넣어준다. 버섯을 건져서 겨자소스에 찍어 먹었다. 버섯전골 국물에는 시원한 버섯 향이 녹아 있다.

고물가에도 버섯 가격은 부담이 덜해

프랑스에서는 버섯을 이용해 따뜻한 달걀 파이인 키슈를 만든다. 먼저 양송이버섯은 올리브 오일에 살짝 볶아서 식혀 두고 베이컨도 따로 볶아 지방 성분을 빼준다. 바싹하게 구운 퍼프 페이스트리를 구워둔다. 달걀과 생크림 믹스를 만들고 여기에 준비한 버섯, 베이컨을 넣으면 재료 준비는 끝난다. 페이스트리 안에 준비한 재료를 넣고 구우면 된다.

레스토랑 주방에서 버섯을 구울 때 프라이팬을 센불에 달궈 준다. 펜에서 살짝 연기가 날 정도면 좋다.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로 맛을 낸다. 이렇게 센불로 버섯에 색을 내주면 자체의 맛을 살리기 좋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인기 메뉴인 버섯샐러드는 불 향이 느껴질 정도로 센불에 구운 버섯을 쓴다.

달걀 파이나 샐러드에도 좋은 버섯
양송이버섯과 표고버섯, 느타리버섯을 건조하는 모습. (필자 제공)

버섯을 다듬다 보면 꽁지 부분이나 아래 줄기를 버리게 된다. 사용량이 많은 식당에서는 이런 부분만 모아서 말릴 수 있다. 어느 정도 양이 되면 진한 버섯 국물을 낼 수도 있고 믹서에 갈아서 버섯 가루를 만들어도 좋다. 가정에서도 새송이버섯처럼 부피가 큰 버섯은 길게 썰어 살짝 말려 보자. 이렇게 볶아 먹으면 미끈거림이 덜하고 쫀득한 식감이 좋다.

말린 자투리 버섯은 국물을 내기에도 좋다. 소고기 육수에 말린 버섯을 넣고 끓이면 여기에 소금간만 해도 버섯 향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인공조미료의 감칠맛과 다른 개운한 맛이다.

폭염에 지쳐 우리 입맛은 여름 음식의 매운 양념이나 조미료에 길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제 습한 기운이 줄어 들었다면 버섯으로 자연의 맛으로 돌아오면 어떨까. 햇빛에 버섯을 말려보며 가을 햇살의 마법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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