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여유로운 향기를 주는 '시소'

전호제 셰프

전호제 셰프

한국이 한창 겨울 추위가 심하던 2월 초였지만 일본에선 봄이 먼저 오는 것 같았다. 얇은 점퍼만 입고도 걸어 다니기 좋아서 야외 테이블에서 하는 식사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것도 잠시의 호사였는지 다시 눈발이 날려 점퍼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건물 안 전자상가로 들어가 몸을 녹였다. 마침 퇴근길 시민들이 많이 모여 있는 전자상가 지하에는 다양한 음식점이 모여 있었다. 빈자리가 없어 보이는 이자카야에 간신히 후미진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예정에 없던 식사라 주위에서 가장 많이 주문하는 일본식 사시미를 시켰다. 빨간 참치와 도미에 연어알이 작은 접시에 오밀조밀하게 담겨 있었다. 풍성한 색감을 담은 음식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졌다.

하나씩 생선 맛을 볼 때마다 깨끗한 뒷맛과 신선함에 놀라게 됐다. 마지막 한 점은 방어였다. 기름기가 많은 방어사시미 옆에는 시소(shiso) 잎이 놓여 있었다. 녹색 시소 잎을 씹으며 고민하다 초밥까지 주문했다. 그날의 식사는 일본에 머물렀던 날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을 정도로 좋았다.

일본임을 느끼게 하는 향신채 시소
일본식 사시미와 시소잎. (필자 제공)

우리나라에서는 생선회를 먹을 때 깻잎에 싸서 마늘, 고추와 함께 충돌하는 맛을 즐긴다. 반면 일본의 깻잎이라 하는 시소는 묘한 상쾌함을 준다. 기름진 방어와 함께하면 비린 맛까지 잡아 주면서도 조화를 깨지 않는다.

시소는 깻잎보다 얇아서 주로 생으로 곁들여 먹지만 보라색 시소는 우메보시 같은 일본식 절임의 필수재료다. 이번에 방문했던 일본 교토에는 여러 가지 야채 절임이 유명했다. 길거리에도 긴 일본 오이를 절여서 노점 간식으로 맛보기도 하고 절임 야채만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있었다. 한 가게에서는 우리가 먹는 노란 배추를 절여 놓았는데 뒷맛에 시소 향이 은은하게 들어간다.

각종 채소절임에도 시소 향을 담아

뉴욕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아침에 시소가 들어오면 누구나 그 향기를 맡아보게 되는 마력이 있었다. 시소를 먹어본 프랑스 출신 요리사들도 그 맛을 자신들의 음식에 녹여내곤 했다. 물론 전통적인 방식과 달랐지만 처음 시소를 접하는 사람들의 입맛을 잡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먼저 시소 잎을 살짝 데쳐서 퓨어 올리브오일과 함께 넣고 갈아내면 진녹색 죽처럼 된다. 이걸 고운 체에 걸러내서 시소의 향이 충분히 녹아 들어간 오일을 만든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허브 오일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다음에 생크림을 휘핑하면서 이 오일을 함께 넣어 시소 크림을 만든다.

살이 오른 방어 살을 소금, 설탕, 레몬 껍질로 2~3시간 재워 놓는다. 이렇게 풍미가 오른 방어 살을 사시미 형태로 하거나 잘게 썰어 타르타르로 만든다. 타르타르 옆에 시소 크림과 청어알로 장식하고 레몬 껍질을 살짝 갈아 올려준다. 신선함과 방어의 풍미에 향기까지 더해져 이른 봄의 에피타이저로 손색이 없었다.

아직 추운 요즘 제격인 방어 타르타르와 시소 크림

시소 잎은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우리나라에서도 구입하기 쉬워졌다. 먹고 남은 시소 잎은 잘 마르거나 검게 변하기도 한다. 이렇게 남은 시소 잎은 튀김 재료로 이용하기도 한다. 시소 잎을 잘게 썰어 튀김옷을 만들 때 넣어보자. 시소 향이 튀김 속에 은은하게 살아 튀김의 맛을 새롭게 해준다.

신선한 시소가 있다면 그대로 뜨거운 물에 살짝 우려 마셔도 좋다. 시소 차에 레몬을 곁들여 보자. 보라색 시소 잎은 차로 만들어져서 먹기 편하고 보관성도 좋다. 만들어진 차에는 상쾌한 향이 가득하다.

주변에서 봄 감기로 기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계절이 됐다. 색깔 가득한 꽃도 좋지만 작은 시소도 키워볼 만하다. 조금만 키우면 꿀과 함께 따뜻한 시소 차로 즐기기도 좋다. 빨리 달리기 전에는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시소 잎의 향기와 함께 올해의 마음가짐도 가다듬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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